[기고] 「앞사람 뒷사람」을 읽고 나서
임순화 강북구청 소식지 명예기자

김문수의 수필 「앞사람 뒷사람」에서 작가는 “숲 앞에 서면 경건해진다.”고 했다.
나는 숲 앞에 서면 경건해지고 죄스럽고 눈물이 나도록 고마워 절을 한다.
만약 이 세상에 저 푸른 숲을 이루는 나무가 없었다면 인간의 생활은 얼마나 삭막했을까? 아마 지금보다 더 세상은 험악하고 살벌했을 것이다.
지구 위에 인간이라는 동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 지구는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웠을까? 비무장 지대 안의 자연 생태계가 그것을 말해 준다.
남-북 간의 시계 청소를 위하여 인위적인 산불로 비록 큰 나무는 없지만 대신 초지의 발달로 온갖 동물들의 자유로운 낙원으로 희귀 식물의 자생지로서 보고를 이루고 있다.
물론 동식물의 보존을 위하여 인간의 삶이 희생될 수야 없겠지만, 큰 우주 자연의 섭리로 볼 때 이 지구 어머니 품에 안겨 살아가는 생명의 가치는 다 함께 존귀한 것이다.
동물과 식물, 인간과 나무, 물, 돌, 흙 등 모든 자연과 인간은 서로 상생하며 살아가야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자연을 정복하였다. 하지만 결코 정복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인데 자연을 정복하겠다는 인간의 오만이 불러온 생태 환경의 파괴는 지금 무서운 재앙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간들은 산을 나무를 또는 계곡의 바위를 마음대로 깎아 내고 베어내고 옮겨오며 또한 지나친 화석 연료의 사용으로 지구 온난화를 재촉한다.
그러나 그 자연은 결코 우리 인간들이 마구 사용하고 훼손해도 될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고 먹여주고 먹히는 자연의 순환 고리에 의하여 상생하여야 할 우리의 어머니이며 형제다.
말없이 서 있는 저 푸른 나무가 뿜어내는 날숨은 우리들의 들숨이 되어 우리의 피를 맑게 해주고 우리들의 날숨은 나무의 들숨이 되어 나무를 잘 자라게 해주는 일이 한순간이라도 나무와 사람들의 들숨과 날숨에 이상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 나무보다 인간이 먼저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숲 우리에게 맑은 공기와 좋은 먹거리를 제공해 주고 온갖 짐승들의 안식처가 되어 주는 숲, 곳곳에 휴양림이 들어서 일상에 찌든 사람들의 마음에 휴식과 안정을 되찾아 주는 역할을 한다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여러 선생님이 지적하셨고 36년 동안이나 묵묵히 산림을 가꾸시며 ‘시’를 써 오셨다는 조연환 산림청 차장님의 나무들이 간벌을 해주지 못해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른다는 비유의 말씀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이제라도 톱을 들고 달려가 시원스레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가지도 쳐 주고 듬성듬성 속아서 베어내 주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속아지고 베어지는 희생이 없이는 나무가 잘 자랄 수 없듯이 역사가 발전하기 위해선 무수히 많은 선각자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문명사회가 있을 수 있기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 희생에 대한 보답의 마음이리라!
자연은 결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어머니처럼 공경하며 형제처럼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할 우리의 분신이다. 앞사람이 깨끗하게 물려준 숲, 뒷사람인 우리가 잘 가꾸어내 뒷사람에게 물려주는 슬기로운 앞사람이 되리라.
나 흙 속에 묻힌 후 이 땅의 흙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되리니! 그리하여 내 후손과 더불어 영원히 살리니 이것이 바로 영원히 사는 영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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