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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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의 아들은 양녕,효령,충녕,성녕입니다. 이중 막내인 성녕 ‘이종’은 14세에 사망했지만 효령은 91세까지 천수를 누렸습니다.(태종은 원경왕후와의 사이에서 8남 4녀를 얻었지만 그 아들 중에서 요절하지 않은 것은 4남 양녕대군, 5남 효령대군, 6남 충녕대군 뿐이었습니다.)

 

맞이 양녕 ‘이제’(앞의 세 형이 줄줄이 요절했습니다.)는 사고뭉치여서 폐세자가 되었습니다. 충녕은 다 아는 바와 같이 세종대왕 ‘이도’입니다. 양녕은 충녕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합니다. “나는 살아서는 왕의 형이요, 죽어서는 부처의 형이다.”

 

효령 ‘이보’가 불가에 귀의한 것을 빗대서 한 말인데 효령은 실제로 머리깍고 출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코믹 사극 영화인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는 진짜 머리 깎고 출가해서 스님이 된 걸로 나오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어떠한 갈등도 없이 홀연히 충녕에게 저위를 넘겼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세간의 평판이나 세속의 권력에 전혀 미련이 없는 모범적 재가 불제자의 표상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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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유학자로서 국시를 따라 불교를 억압하면 억압했지 결코 불교를 지켜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효령대군이 나서면 불교에 대한 적대감보다도 형제애가 우선이었던 세종도 한 발 물러섰고 그 덕에 조선 초기 불교계에서는 효령이 엄청난 우군이었습니다.

 

효령은 태조 5년에 태어나 큰아버지 정종과 아버지 태종의 즉위를 지켜봤고, 이후 동생인 세종, 조카 문종, 종손 단종의 즉위와 그 이후의 수양대군이 벌인 계유정난을 두 눈으로 목격했으며 이후 예종과 성종의 즉위와 세종의 현손 연산군의 탄생까지 지켜보고도 10년을 더 살았습니다.

 

능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부인인 예성부부인과 함께 예장되었고 묘소 옆에는 청권사 사당이 있습니다. 서울교통공사~뱅뱅사거리 구간의 도로가 효령로가 된 것도 효령대군 묘소가 있어 따온 것입니다.

 

이승만 정권 시절의 2인자이자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로 악명 높은 이기붕(아들은 이강석)은 효령대군의 후손이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양녕대군의 후손입니다.

 

효령대군의 후손인 유명인사로 아나운서 이계진, ‘만추’의 영화감독 이만희, 영화배우 이정재와 이성재, 그리고 가수 이상은,이수만이 있습니다.

 

지금 양주회암사지박물관에서 ‘효령대군 특별전’을 9월 25일까지 진행합니다. 코로나로 지친 심신, 박물관 옆 너른 잔디와 친절한 젊은 부부가 내어주는 커피로 치유해주는 건 어떤가요? 

 

king - kin

왕(king)의 친족(kin)은 살기 위해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이강석 소개】

현재 ‘한글자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내 운명을 바꾼 한글자』, 『특허받은 영어학습법』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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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풍경과 영어 한글자] 양주회암사지박물관 ‘효령대군’, king - 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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