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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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조규태 한성대 교수, 성주현 1923 제노사이드연구소 부소장, 조성운 동국대 겸임교수, 이시종 민화협 사무처장 Ⓒ통통미디어

 

지난 19일 오후 2시 천도교 수운회관 3층에서 「순국 100주년 기념 의암 손병희의 역사적 재조명」이란 주제로 동학학회와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공동주최한 2022년 동학학회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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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하고 있는 박상종 천도교 교령 Ⓒ통통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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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하고 있는 김재옥 (사)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이사장 Ⓒ통통미디어

 

박상종 천도교 교령과 김재옥 (사)민족대표33인기념사회회 이사장 축사에 이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이 기조강연 「의암 손병희의 생애와 민족운동」을 발표했고, 발표문 중 ‘손병희와 3·1혁명’에서 인용했다.

 

개인의 신분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걸출한 민족의 지도자가 된 의암 손병희 선생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역사적 변혁을 주도한 중심 인물이다.

 

첫째는 동학군 북접 통령으로 임명되어 보국안민·광제창생·척왜척양의 기치아래 북접 1만 혁명군을 이끌고 관군·왜군과 싸운 치열한 혁명가이다.

 

둘째는 개벽·개화·제세구민·인내천·만인평등을 내세우며 창도한 동학의 3세 교조로서 서세동점의 격동기에 시대를 광정, 백성을 위무하고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여 민족종교의 발판을 만든 신실한 종교지도자이다.

 

셋째는 일제강점기에 국권회복을 위해 민족대표들을 결집, 민족대연합을 통해 세계 만방에 대한의 자주독립을 선포한 기미 3·1혁명을 주도한 독립운동의 선각자이다.

 

동학혁명이 반봉건·반외세 투쟁의 근대적 분기점이라면, 천도교 창설은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종교개혁의 시발점이고, 3·1혁명은 반제·자주독립과 민주공화주의를 연 현대사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심에 의암 손병희 선생이 존재한다.

 

우리 근현대사의 빛나는 성좌 중에 이 세 가지 역사적 과제에 참여하거나 주도한 인물은 의암 선생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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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박세준 덕성여대 교수, 성주현 1923 제노사이드연구소 부소장, 김영진 경희대 교수 Ⓒ통통미디어

  

토론 좌장은 성주현 1923 제노사이드연구소 부소장이 맡았고, 주제1 「의암 손병희와 민족운동」 발표는 조규태 한성대 교수, 토론은 이시종 민화협 사무처장, 주제2 「3·1운동과 의암 손병희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 발표는 성강현 동의대 겸임교수, 토론은 조성운 동국대 겸임교수, 주제3 「의암 손병희의 독립국가사상」 발표는 임형진 경희대 교수, 토론은 조극훈 경기대 교수, 마지막으로 주제4 「한국독립운동과 의암 손병희의 역사적 평가」 발표는 박세준 덕성여대 교수, 토론은 김영진 경희대 교수가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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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종 천도교 교령은 “3세 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은 1919년 기미년이 오기 훨씬 전인 1912년부터 봉황각을 지으시고 전국의 인재를 양성해 3·1독립만세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3·1독립을 천도교만이 아닌 대한의 모든 국민들과 함께하고자 하셨습니다. 당시 국내 가장 큰 종단이었지만 오히려 타 종단 분들이 더 많이 참여해 주기를 배려해 주었습니다. (중략)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의암 성사님의 활동과 정신 그리고 업적이 더욱 더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5월 19일은 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년이다. 오전 11시 수운회관 옆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추모식과 학술문화제 등을 진행했으며, 수운회관 3층에서 2022년 동학학회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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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년! ·· 동학학회 학술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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