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0-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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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기후위기, 극단적 불평등, 생존위기 등 불안한 민심에 편승하는 위세를 떠는 낡은 엘리트와 이런 세상을 만든 책임을 통감하고 여전히 소리없이 대안을 모색하는 새로운 엘리트가 있다.

 

 

위기와 위기의 징후들이 도처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극단적인 불평등, 가라앉을 줄 모르는 자살률, 세계 최저의 출생률, 사라지는 노동과 생존 위기, 여기에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 세계 경제의 재블럭화, 이념과 진영의 재구성 등 대외적인 여건 역시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위험을 회피하면서 기회를 만들어 낼 지혜가 절실한 시간들이다. 대중의 숙성된 지혜만큼이나 엘리트의 탁월성이 간절히 요구되는 시간들이다.

 

다수가 생산에 종사하는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에 엘리트는 글을 읽고서, 일하고 잠자기 바쁜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고, 자신의 체계화된 지식을 ‘교육’이란 이름으로 전수하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엘리트들이 전수한 지식에 기반해서 정치와 삶을 개선해 갔다.

 

그러나 디지털 정보 사회가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제 정보와 지식은 엘리트의 독점물이 아니다. 원하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기존 엘리트를 넘어선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엘리트는 체계화된 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 교육자가 아니라 위기를 돌파할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는 창조자들이다.

 

오래된 자신의 관점과 지식을 사람들에게 훈육하고, 세상이 제 뜻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엘리트는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세상을 탓할 일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이 어디에 있는지 성찰하고, 제 생각과 세상 흐름 간 간극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이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엘리트라 부를 일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그저 수십 년간 정당민주주의를 반복적으로 외치고, 그게 되지 않는 이유는 ‘노오력’이 부족함을 탓만 하는 엘리트.

 

 

기후 위기, 생태계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허공에 대고) 누군가를 심하게 나무라며 위세를 떨고 있는 엘리트.

 

빈부격차와 불평등 심화를 고발하면서 또 다시 정권 탈환만이 길이라거나 철 지난 민중혁명을 주문하는 엘리트.

 

이들 엘리트의 공통점은 ‘내 이럴 줄 알았다’이다. ‘나는 말했는데, 세상이 변하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다’이다. 바로 이 지점이 당신이 낡은 엘리트인 이유다.

 

적어도 엘리트라면, 옳든 그르든 자신의 주장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뒤돌아 봐야 할 것 아닌가?

 

세상이 이렇게 변한 건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수의 사람이 뭔가를 누린 것이다. 모든 사람이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배경과 연유를 제대로 파악하고, 자신을 스스로 교정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입장을 세우고,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훈계하는 엘리트가 고루한 사람들에겐 일관성이 있어 멋있게 보일진 몰라도, 세상에 훈계만 하고 현실적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는 그런 엘리트, 사람들은 부담스러울 뿐이다.

 

 

지금 엘리트에게 필요한 건, 세상이 요렇게 되었다고 남 탓할 일이 아니라 세상 혜택을 누리면서도 사람들에게 보다 설득력있고 실천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자신을 뒤돌아보고 그 원인과 한계를 발견하는 일이다. 

 

 

【약력 소개】

현재 국회등록 사단법인 한국공론포럼 상임대표이며, 사회갈등연구소 소장, 국토부 갈등관리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어요.

생태학 박사이며, 지난 20년간 갈등해결과 공론장 형성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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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낡은 엘리트? → 새로운 엘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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