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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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어디에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현상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후세계를 무기로 한 일부 종교인들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근세기 말 서구 물질위주인 산수(算数)로 시작된 문명화가 현재 21세기 인류가 느끼는 행·불행의 척도를 가늠하는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인문학으로서 철학이 경시된 사회이다 보니 누구나 공감하며 감동을 주는 선량한 아름다움이 항상 그립기만 하다.

 

어머니의 계절이라고 하는 겨울이 그래서 더욱 춥게 느껴진다. 특히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변모한 나라일수록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지리적, 환경적 특수성 때문에 고대부터 군현제를 함께 시행해 온 독특한 민족국가이다. 유구한 역사와 자랑스러운 문화를 계승하면서 발전해 왔다.

 

근세기 말 역사상 초유의 사태로 외세에 국권을 강탈당하고 약 34년 11개월 동안 식민이라는 치욕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

 

식민주의를 극복하며 나라를 다시 찾게 한 독립투사들에 대한 역사가 심한 오류와 왜곡으로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이것은 국가정체성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후 또 다시 외세에 의한 민족분단으로 국가가 고통을 감내하는 가운데 지금의 경제와 문화 강국을 만들어 낸 우리 민족은 이미 국제 표상이 되었다.

 

친일 반민족 세력과 군사독재, 이에 편승한 공무원들이 주도한 관치라는 틈바구니 속에서도 슬기롭게 대처한 위대한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적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현재 한국사회는 국가 정체성 부재로 갈등. 대립. 반목이 이어지면서 좌충우돌 현상으로 치닫고 있는 답답한 현실이다.

 

왕권 봉건사회가 외세에 의해 강제로 붕괴되는 바람에 민주 공화정 국가로 전환되는 시기의 역사가 올바르게 정립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원인들 때문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본다. 지난 1월 7일 청주시 소재 모 문중의 종친회의에 참석하였다. 

 

그 문중은 조선 제9대 성종대왕 손녀였던 옹주가 파 조모였으며 조선시대 정통보수 남인문중의 좌장격이었다.

 

조선말 왕권 위에 군림했던 노론 성역인 청천 화양동과 지역 경계로 집성촌 세거지에서 노론과 약 250여 년 동안 대립을 해 온 저력을 갖고 있었다.

 

이들 문중 외가로 기미독립선언 33인 중 한 분이었던 권병덕은 동학교도로 동학 제2대 교주인 최시형선생과 함께 문중의 비호 하에 동학도를 이끌었다. 1893년 2월 11일 조선 조정에 동학도 신원하기 위해 복합상소문을 작성하였다.

 

또한 1894년 1월 전봉준의 우발적 봉기 이후 조선땅에서 청일전쟁 결과 일본이 승리하고 동학도 살육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해 9월 일본에 항거하기 위해 동학혁명본부와 한활단 비밀결사체를 운영하였다.

 

이 문중은 한민족 공화주의 혁명가인 임시정부 아버지 예관 신규식, 단재 신채호, 경부 신백우,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지은 우창 신석우, 문중 좌장의 혈손 송암 신경구 등 공화주의를 선도한 독립투사들을 다수 배출했다.

 

게다가 이들 독립투사들이 주도하여 1919년 한민족을 위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이라는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가 한민족의 민주와 공화를 위한 효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묻혀져 있으며, 단절된 역사 때문에 현재 한국사회는 민족 정체성 부재로 각종 문제를 안고 신음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오늘 이 문중 종친회에 가게 되었다. 문중 역사를 잘 알 수밖에 없는 문중 좌장 혈손이며 독립투사 손자가 처음 참석했던 것이다. 

 

약 14대 동안 약 500년 가까이 대대로 재상의 직을 이어 온 문중 좌장의 혈손이 질문했다.

 

“종친회 규약을 보았는데, 이 규약 제정을 위한 종헌이 있는가?” 라고 하면서 “국가로 말하면 헌법이고, 헌법은 역사에 기인한다. 헌법에 의하여 법률이 제정되듯이 종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종친회에서는 “규약만 있으면 된다”고 짧게 답변했다. 마지막으로 “귀 종친회는 재화만을 위한 종친회인가?”라고 반문하면서 할 말을 잃은채 독립유공자 손자는 겨울 바람에 흰 머리카락 날리며 노구의 몸을 화물차에 싣고 떠나 버렸다.

 

그 독립유공자 유족은 고조부와 증조부가 동학혁명에서, 조부는 독립투쟁으로, 부친은 6.25전쟁에서 희생되었고, 본인은 특전사에서 몸을 다쳐 평생을 고통 속에 살면서 정부 도움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대들과 문중의 독립투쟁역사 연구와 정립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종친회가 먼저 나서지는 못할망정 종친회가 하고 있는 행태를 보고 있자니 참담한 심정이었고, 모든 일에는 주인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나게 했다. 

 

이런 문중 현실이 바로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아닐까..

 

“진리는 따르는 자가 있고, 진실은 찾는 자가 있으며, 정의는 언젠가 바로 서게 된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 본 기고문은 통통미디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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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흔들리는 정체성 ·· 종친회도, 국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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