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0(금)
 

신동명s.jpg

의정부는 오랫동안 ‘기지촌’, ‘양색시촌’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쓰고 살아온 지역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군부대가 평택으로 기지를 옮기면서 번화했던 클럽들도 자취를 감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의정부를 지칭했던 낡은 비유들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신 그 자리를 미군부대 보급물자인 고기를 넣어 끓인 ‘부대찌개’가 메워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뇌리에는 의정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상태다. 

 

의정부라는 동네에서 63년도에 태어나 지금까지 59년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가 내 시대에서 끝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의정부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게만큼은 깨끗하고 좋은 이미지의 의정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이러한 마음에 의정부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요즘도 그것을 찾아나서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나의 일상의 지침서이자 나침반이 된 책이 있다. 1997년 2월 25일 발행된 <의정부지명유래>이다. 의정부시에서 발행된 이 책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나의 책꽂이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한 건, 지명을 연구하는 나에게는 보물 같은 존재라는 점이다. 1990년대 지명의 연원 조사와 발굴 노력이 없었다면 각 지역의 지명들은 산업화와 건설 붐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noname01.png
1997년도에 발간된 ‘의정부 지명유래’책자

  

나는 의정부의 지역 이미지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의정부에서 최고이거나 최초가 되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왜냐하면 최고이거나 최초가 되면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가 클 것이고,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도 끌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례는 근처 지역인 연천을 들 수 있다. 초기 구석기 유물인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연천이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다시 한번 문화와 역사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인 것이다. 

 


 

의정부지명유래’라는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역사적으로 기려야 할 것은 없을까?’, ‘최초이거나 최고가 될 수 있는 것은 있을까?’ 등등을 떠올려보던 중 ‘뭉어리골’이라는 지명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의정부지명유래’ 128p 9.에는 ‘뭉어리골’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뭉어리골’은 거문돌에서 치마바위로 올라가는 골짜기로, 이곳에 예전에 ‘뭉어리’라는 고기도 아니고 도마뱀도 아닌 이상한 동물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noname02.png
128p 9번에 소개된 ‘뭉어리골’


‘아, 어류도 아닌 것이, 양서류도 아닌 것이 의정부에 살았다고?’ 놀라운 마음을 진정시켜놓고 나는 뭉어리와 관련된 어원들을 찾아보았다. 혹시나 몰라 다른 지역에도 같은 지명이 있는지 뒤지고 또 뒤져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뭉어리와 관련된 어원도 그러한 신비의 생명체도 언급된 지역은 없었다.

 

‘주먹도끼’로 유명해진 연천처럼 혹시 이 생명체가 의정부를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류와 양서류 중간 단계의 생명체가 있는지 조사를 하였다.

 

그러던 내 눈에 ‘틱타알릭’이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잃어버린 고리’라는 다른 이름을 가진 생명체. 그동안 생명의 진화를 연구하면서 어류가 뭍으로 나와 양서류로 발전하는 단계가 발견되지 않아 연구가 정체되고 있었는데 2004년 캐나다 북부의 데본기 지층에서 닐 슈빈(Neil H. Shubin) 박사 공동 연구진에 의해 어류 화석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 화석은 바로 어류에서 양서류로 진화하는 중간 과정(사지형 어류, fishapod)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고 ‘잃어버린 고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틱타알릭’이라는 이름은 캐나다 북부 원주민 이누이트 족 장로들의 제안에 따른 것으로 그들의 언어로 부르봇(burbot, 대구를 닮은 민물고기)을 뜻하는 ‘Tiktaalik’으로 정했다고 한다.

 

‘틱타알릭’은 데본기 이후인 3억 7,500만 년 전에 존재했을 것으로 예측되는 생명체로 툰드라와 빙설기후인 동토(凍土) 캐나다 앨즈미어 섬에서 발견됐다는 것을 보면 굉장히 차가운 환경에 사는 냉수성 생명체인 것이 분명했다.

 

noname03.png
3억 7500만 년 전에 출현한 ‘뭉어리(틱타알릭)’ 상상도


그 이후부터 인터넷을 뒤지며 ‘뭉어리골’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어 올리지 않았을까? 답사하기 전에 정확한 위치와 생김새를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그 시도는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어디에도 ‘뭉어리골’이라는 이름으로의 사진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루 지나 이틀 일주일 한 달을 뒤져 보았지만 아무도 ‘뭉어리골’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이나 글은 보이지 않았다. ‘뭉어리골’은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이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뭉어리골’로 추정되는 계곡의 사진들을 수집해 보았다. ‘검은돌 계곡’, ‘천문 계곡’, ‘은선동 계곡’, ‘흑석 계곡’등 다양하게 올라와 있었다. 그 중 가장 ‘뭉어리골’일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계곡은 ‘천문계곡’이었다. 다른 골짜기보다 ‘깊이 패여 있는 모습’과 글들이 ‘얼음장처럼 차갑다’는 표현을 가장 많이 남긴 장소였기 때문이다.

 

다음 작업으로는 그 동네 살았던 친구들이나 선배들에게 전화 또는 직접 대면하여 ‘뭉어리골’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3년 선배가 어렸을 때 물장구치러 흑석 계곡에 가면 그 동네 사람들이 거기를 ‘뭉어리골’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얼핏 들었다는 이야기 정도가 그 지명에 남은 마지막 흔적이었다.

 

이 정도를 가지고는 ‘뭉어리골’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정확한 장소와 이름이 일치하는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뭉어리골’에 대한 나의 연구와 궁금증은 한동안 단 한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한 해, 두 해를 넘기고 10년째 들어서고 있었다. 

 

마음은 빨리 올라가서 대충 사진 찍고 여기가 ‘뭉어리골’이라고 우겨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건 양심상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뭉어리골’의 아쉬움은 뇌수의 한 부분으로 몰아놓은 상태로 지내게 되었고, 차츰 그 생각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계속)

 

 

【약력 소개】

전국지명밟기운동본부 전국 총재, 장관상타기 전국청소년토론축제 전국 총재입니다.

의정부서 태어났으며 교육학 박사과정이며, 영석고총동문회 4대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 본 기고문은 통통미디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체댓글 0

  • 59951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신동명의 지명밟기] ⑦ 글로 만난 의정부 ‘뭉어리골’!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