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6(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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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우측부터: 신 독립아리랑 대표 최우정, 동제사 운영위원 조대근, 단재학당 교장 조병현 박사. 충청북도 보건복지국장 김용호(이시종 충북도지사 추모사 대독), 전 한·중·일 풍수학회 회장 신태호, 독립유공자 유족의 대한민국 건국회 동제사 회장 신환우, 충청북도 문화사랑 대표 정지성, 고령(산동)신 씨 문중 대표 신홍식, 맨 왼쪽 동제사 운영위원 이상열 [사진제공=신환우]


지난 9월 25일 토요일 청주시 31공원 옆 선양시설 예정부지에서 예관 신규식 선생 서거 99주기 첫 추모식 행사는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며 최소 인원 참가한 가운데 온라인 비대면 추모행사로 진행되었다.

 

유족들이 마련해 놓은 청주시 상당구 수동 112-2번지 3.1공원 옆(선양시설 예정부지)에서 오늘 서거 99주기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추모를 위한 예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의 천재로 탄생하여 일생 그 자체가 자신의 저서에서처럼 ‘한국혼’이었고, 배달민족을 위한 새 역사창조의 주역 이었으나 아직도 대한민국 국적조차도 없는 유혼이 되어 있다. 오늘 추모식 행사는 예관 신규식 선생의 구국을 위한 독립정신을 이어가려는 열기만큼은 그 어떤 행사보다도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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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 단재학당 교장 조병현 박사, 독립유공자 유족의 동제사 회장 신환우 [사진제공=신환우]

 

독립유공자 유족의 대한민국 건국회 동제사:同濟社 신환우 회장은 다음과 같이 헌사를 마무리했다.

 

“... 오늘 국부:國父 예관 신규식 선생 서거 99주기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추모를 하게 된 우리 유족들은 아직까지도 묻혀져 있을 수 밖에 없었던 통한의 사역:史曆을 뒤로 하고 선대의 위업을 통하여 배달민족을 위한 역사적 사명을 계승·발전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아버지 !

국부:國父 예관 신규식 선생 ! 그 일생, 그 자체로서의 ‘한국 혼’이었던 그 고결한 정신, 올곧이 이어서 배달민족의 가슴마다에게 항상 용솟음치는 ‘울림‘의 대한민국으로 길이 보전 하겠습니다.”

   


 

 

▣ 한국인 초유의 공화혁명가 예관 신규식 선생은 1912년 5월 20일(음) 상해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건국의 산실이었던 동제사를 건립했으며, 한편 동제사는 세계 각 국가에 지부를 두고 망국의 조선을 대신하는 국가의 역할을 하였다. 

  1912년 12월 7일에는 박달학원을 설립하여 윤보선·여운형·이범석·민필호 등 수많은 독립투쟁 역사상 거인들을 배출하였다. 

 또한 1917년 7월에는 배달민족을 이은 민주공화국체의 건국을 위하여 최초의 독립선언문인 대동단결선언을 하였다. 

 대동단결선언문은 국가 문화재 제652호로 등재되어 있으며 공화국체로 현존하는 남북한의 정통성의 토대가 되어 있다,


▣ 박달학원에서 배출한 제자 여운형을 지도하여 동제사 산하 기구로서, 1918년 8월 20일 한민족 역사상 최초의 정치정당이었던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게 하여 이후 2·8 동경독립선언에 이은 3월 독립혁명의 선봉에서 활약하게 지도 지휘를 하였다. 

 이어서 신한청년당은 4월 11일에 상해 임시정부 건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상해 임시정부 건립 발기인 29인 중에서 10인이 신한청년당원이었으며, 모두가 동제사 요원이었다. 

 예관 신규식 선생은 임시정부 수립을 하는 당시에 정작 본인은 아무런 직책을 가지지 않았으며, 모든 공적들을 동지들에게 돌려 주었다,

 

▣ 임시정부의 안정과 위상제고를 위하여 1921년 11월 18일 중국 신해혁명 동지였던 손문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이에 정식 국교수립을 하였다.

 후일 이 근거에 의하여 장개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 할 수밖에 없었으며, 1940년 8월 17일 광복군은 그렇게 창설되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과 국교수립까지 해 놓았으나 지속되는 대립과 파벌싸움에 대한 화합을 요구하는 단식 투쟁을 3불(不食·不藥·不飮)로 일관하던 25일째 되던 날, 임시정부를 지켜내라고 하는 “정부 ! 정부 ! 정부 ! ”라는 순절 음을 끝으로 장렬하게 서거하였다. 

 예관 신규식 선생이 서거하기 전 동제사 비밀요원들을 모아 놓고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켜내라는 지령(명령)을 내렸다. 이 말은 그의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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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아버지, 예관 신규식 선생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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