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1(토)
 

[편집자주] 지난 15일과 16일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선생이 화전민으로 살았던 포항 신광면 검곡에서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선생이 득도했던 경주 현곡면 가정리 용담정까지 도보순례에 함께 했다. 16일은 음력 4월 5일, 수운선생이 1860년 득도했던 날이다. 이번 도보순례는 수운살기(Living with Soowoon) 박동산대표가 기획하고 주관했다.

[동학을 걷는다. 검곡에서 용담까지] 4회에 걸쳐 연재한다. ① 검곡가는 길, ‘상마북저수지’에서 바라보다 ② ‘해월 최시형 선생님 말씀’, 만석삼거리 돌에 새겨 ③ 해월선생이 수운선생 찾아간 ‘극적인 만남’ ④ 용담정까지 ·· 힘들었어도 끝까지 걸었다!

2어록비As.jpg
반곡저수지 옆 커다란 소나무들, 신광면 만석삼거리 해월 최시형선생님 어록비 ⓒ통통미디어 지도-네이버 지형지도

 

20210515_141803s.jpg
반곡저수지 왼쪽 길가에 커다란 소나무들 ⓒ통통미디어

 

20210515_141814s.jpg
반곡저수지와 커다란 소나무들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통통미디어

 

마북저수지를 지나서 걷다보면 오른쪽에 반곡저수지가 나온다. 오후 2시 20분 왼쪽 길가에 커다란 소나무들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서있었다. 주위엔 논과 밭 뿐이어서 멀리서도 잘 보였다.

 


 

20210515%EF%BC%BF150359.jpg
포항시 신광면 만석삼거리에 〈해월 최시형 선생님 어록비〉 ⓒ통통미디어


20210515%EF%BC%BF145351.jpg
만석삼거리. 좌측 길 건너 경운기 우측에 어록비가 서있다. 직진도로는 신광면 기일, 반곡, 마북으로 들어간다. 우측방향 도로는 영덕, 청하방면으로 간다 ⓒ통통미디어

 

20210515%EF%BC%BF150054.jpg
수운살기 박동산대표가 〈해월 최시형 선생님 어록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통통미디어

 

오후 2시반 신광면 만석삼거리에서 해월 최시형선생 말씀을 새긴 비를 만났다. 만석삼거리 못 미처 우측에 밭 가장자리 곡강천 가까이 있다. 다음의 URL은 카카오지도에 정확한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https://place.map.kakao.com/m/51660971?service=search_m

  


 

박동산선생님s.jpg
15일 저녁 안강읍에 도착해 늦은 저녁자리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수운살기 박동산대표 ⓒ통통미디어


뜻있는 천도교인들이 모은 성금과 신광면 이장 21명 도움을 받아 ·· 어록비 세웠다 

동학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선생 순도 100주년을 맞이해 저와 뜻있는 천도교인들이 성금을 모아 세웠다.”고 수운살기 박동산대표가 밝혔다. “1998년 서울에서 21차례 신광면 내려가 이장 21명을 설득해 필요한 도움을 받았다. 부지 위치는 해월선생이 살았던 신광면 기일과 신광면 마북동 들어가는 길목에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만석삼거리로 정했다. 부지는 신광면에서 마련했고, 이장들이 공사를 맡았다. 어록비 돌은 해월부인이 태어난 흥해(興海)에서 준비했고, 글씨는 신광중학교 3학년 이향미학생이 한 달 동안 연습해서 썼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약력 소개

벽암 박노진. 수운살기 대표입니다. ()유명산숲학교 교장, 숲유치원협회 이사, 숲연구소 소장, 종교인협의회 환경분과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2018년 1월 신인간에 실린 〈해월신사의 생애(1)〉에서 다음과 같이 간추렸다.

 

해월선생(당시 최경상)은 1827년 어머니 고향인 경주 동촌 황오리에서 태어나 6세 때에 어머니를 여의고, 부친의 고향 신광면 기일동(基日洞)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5세 부친마저 돌아가시며 고난이 시작되었다. 17세 마을 제지소 일을 했으며 18세부터 흥해나 청하, 포항, 겨우, 영덕 등 인근 지역 거래처에 한지를 가져다 주고 대금을 받아오는 일도 맡았다. 28세에 산등성이 하나 넘어 신광면 마북동으로 이사오자 마을대표격인 집강(執綱)을 맡아 성실하게 일했다. 33세인 1859년 마북동 안쪽 5리 떨어진 검곡 산중으로 들어가 화전민으로 생활했다.

 

35세인 1861년 수운대선생을 찾아 동학에 입도후 정성을 다해 열심히 수련한 결과, 37세인 1863년 해월이란 호를 받고 동학의 도통을 잇게 되었다. 72세인 1898년 순도했으며 36년간 50여 곳을 숨어 다니면서 동학의 기초를 닦았다.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기도 등 삼남 일대는 해월선생의 피어린 발자취가 서려 있지 않은 곳이 없다.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간행했고 1894년 동학혁명을 지도했으며 1898년 한성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도했다.

      


 

비를 세운지 23년이 지난 지금도 만석삼거리에 해월 최시형 선생님 어록비가 있다. 해월선생 말씀은 ‘대인접물(待人接物)’에 있는 말이었고, 1872년 1월 해월선생이 ‘대인접물’을 처음 설법했다.


20210515_143619s.jpg
〈해월 최시형 선생님 말씀〉 앞면은 해월선생 '대인접물' 중에서 인용했다 ⓒ통통미디어


해월 최시형 선생 말씀〉 앞면에 새긴 내용은 대인접물(待人接物) 중에 다음과 같다.

 

  사람을 대할 때에 언제나 어린아이 같이 하라. 항상 꽃이 피는 듯이 얼굴을 가지면 가히 사람을 융화하고 덕을 이루는데 들어가리라.

  누가 나에게 어른이 아니며 누가 나에게 스승이 아니리오. 나는 비록 부인과 어린아이의 말이라도 배울만한 것은 배우고 스승으로 모실만한 것은 스승으로 모시노라.

  일이 있으면 사리를 가리어 일에 응하고 일이 없으면 조용히 앉아서 마음 공부를 하라. 말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심술에 가장 해로우니라.

  남을 훼방하고 배척하여 삶을 상하게 하는 것은 군자가 이르기를 불효라 하였으니, 사람의 장단을 말하는 것은 도덕에 크게 해로우니라. 양공은 구부러진 재목을 거절하지 아니하고, 명의는 병든 사람을 거절하지 아니 하느니라.

  말은 행할 것을 돌아보고 행동은 말한 것을 돌아보아, 말과 행동을 한결같이 하라.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기면 마음과 한울이 서로 떨어지고, 마음과 한울이 서로 떨어지면 비록 해가 다하고 세상이 꺼질지라도 성현의 지위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만물이 시천주 아님이 없으니 능히 이 이치를 알면 살생은 금치 아니해도 자연히 금해지리라. 제비의 알을 깨치지 아니한 뒤에라야 봉황이 와서 거동하고, 초목의 싹을 꺾지 아니한 뒤에라야 산림이 무성하리라. 손수 꽃가지를 꺾으면 그 열매를 따지 못할 것이오, 폐물을 버리면 부자가 될 수 없느니라. 날짐승 삼천도 각각 그 종류가 있고 털벌레 삼천도 각각 그 목숨이 있으니, 물건을 공경하면 덕이 만방에 미치리라.



 

경주로 들어가는 모습.jpg
포항시 신광면 안덕리 비학로길을 따라 걸으면서 경주시 강동면에 막 들어서는 모습이다 ⓒ통통미디어

 

오후3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만석교를 건넜다. 비학산 아래 신광면 안덕리 비학로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서 포항시를 벗어났고 경주시 강동면에 들어섰다. 발가락에 물집도 생겼고 배낭 때문에 어깨가 아팠으나 안강읍 가는 길을 재촉했다. 

 

20210515%EF%BC%BF200031.jpg
경주시 강동면에서 안강읍내로 가는 길엔 이미 어둠이 깔렸다 ⓒ통통미디어

 

어느새 어둠마저 깔려 사방은 깜깜하고 가끔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 불빛만 비쳤다. 너무 많이 걸어서 그런지 다리는 이제 감각마저 없었다. 논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컴컴한 밤하늘을 울리자 내 몸까지 울렸고, 비몽사몽간에 1시간 이상 걷고 또 걸었다. 참으로 기억에 남는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드디어 밤 8시반 안강읍에 무사히 도착했다. 

  

전체댓글 0

  • 68886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동학을 걷는다. 검곡에서 용담까지] ② ‘해월 최시형 선생님 말씀’, 만석삼거리 돌에 새겨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