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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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년! ·· 동학학회 학술대회 개최
전문뉴스 05-2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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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뉴스 05-13 12:02
[이슈브리핑] “연천군 투자 양해각서 체결 ·· 최종목표 아냐!”
05-10 13:35
[이슈브리핑] “주민이 만든 주민조례 탄생!”
05-02 15:15
[이슈브리핑] “지연, 학연 NO! ·· 지역경제 살릴 능력있는 리더 필요”
04-24 21:58
[이슈브리핑] “연천 임진강 두루미 보호, 국가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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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정환 05-20 14:22

    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년! ·· 동학학회 학술대회 개최

    지난 19일 오후 2시 천도교 수운회관 3층에서 「순국 100주년 기념 의암 손병희의 역사적 재조명」이란 주제로 동학학회와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공동주최한 2022년 동학학회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박상종 천도교 교령과 김재옥 (사)민족대표33인기념사회회 이사장 축사에 이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이 기조강연 「의암 손병희의 생애와 민족운동」을 발표했고, 발표문 중 ‘손병희와 3·1혁명’에서 인용했다. 개인의 신분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걸출한 민족의 지도자가 된 의암 손병희 선생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역사적 변혁을 주도한 중심 인물이다. 첫째는 동학군 북접 통령으로 임명되어 보국안민·광제창생·척왜척양의 기치아래 북접 1만 혁명군을 이끌고 관군·왜군과 싸운 치열한 혁명가이다. 둘째는 개벽·개화·제세구민·인내천·만인평등을 내세우며 창도한 동학의 3세 교조로서 서세동점의 격동기에 시대를 광정, 백성을 위무하고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여 민족종교의 발판을 만든 신실한 종교지도자이다. 셋째는 일제강점기에 국권회복을 위해 민족대표들을 결집, 민족대연합을 통해 세계 만방에 대한의 자주독립을 선포한 기미 3·1혁명을 주도한 독립운동의 선각자이다. 동학혁명이 반봉건·반외세 투쟁의 근대적 분기점이라면, 천도교 창설은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종교개혁의 시발점이고, 3·1혁명은 반제·자주독립과 민주공화주의를 연 현대사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심에 의암 손병희 선생이 존재한다. 우리 근현대사의 빛나는 성좌 중에 이 세 가지 역사적 과제에 참여하거나 주도한 인물은 의암 선생이 유일하다. 토론 좌장은 성주현 1923 제노사이드연구소 부소장이 맡았고, 주제1 「의암 손병희와 민족운동」 발표는 조규태 한성대 교수, 토론은 이시종 민화협 사무처장, 주제2 「3·1운동과 의암 손병희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 발표는 성강현 동의대 겸임교수, 토론은 조성운 동국대 겸임교수, 주제3 「의암 손병희의 독립국가사상」 발표는 임형진 경희대 교수, 토론은 조극훈 경기대 교수, 마지막으로 주제4 「한국독립운동과 의암 손병희의 역사적 평가」 발표는 박세준 덕성여대 교수, 토론은 김영진 경희대 교수가 발표했다. 박상종 천도교 교령은 “3세 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은 1919년 기미년이 오기 훨씬 전인 1912년부터 봉황각을 지으시고 전국의 인재를 양성해 3·1독립만세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3·1독립을 천도교만이 아닌 대한의 모든 국민들과 함께하고자 하셨습니다. 당시 국내 가장 큰 종단이었지만 오히려 타 종단 분들이 더 많이 참여해 주기를 배려해 주었습니다. (중략)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의암 성사님의 활동과 정신 그리고 업적이 더욱 더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5월 19일은 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년이다. 오전 11시 수운회관 옆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추모식과 학술문화제 등을 진행했으며, 수운회관 3층에서 2022년 동학학회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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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년! ·· 동학학회 학술대회 개최
    지난 19일 오후 2시 천도교 수운회관 3층에서 「순국 100주년 기념 의암 손병희의 역사적 재조명」이란 주제로 동학학회와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공동주최한 2022년 동학학회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박상종 천도교 교령과 김재옥 (사)민족대표33인기념사회회 이사장 축사에 이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이 기조강연 「의암 손병희의 생애와 민족운동」을 발표했고, 발표문 중 ‘손병희와 3·1혁명’에서 인용했다. 개인의 신분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걸출한 민족의 지도자가 된 의암 손병희 선생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역사적 변혁을 주도한 중심 인물이다. 첫째는 동학군 북접 통령으로 임명되어 보국안민·광제창생·척왜척양의 기치아래 북접 1만 혁명군을 이끌고 관군·왜군과 싸운 치열한 혁명가이다. 둘째는 개벽·개화·제세구민·인내천·만인평등을 내세우며 창도한 동학의 3세 교조로서 서세동점의 격동기에 시대를 광정, 백성을 위무하고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여 민족종교의 발판을 만든 신실한 종교지도자이다. 셋째는 일제강점기에 국권회복을 위해 민족대표들을 결집, 민족대연합을 통해 세계 만방에 대한의 자주독립을 선포한 기미 3·1혁명을 주도한 독립운동의 선각자이다. 동학혁명이 반봉건·반외세 투쟁의 근대적 분기점이라면, 천도교 창설은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종교개혁의 시발점이고, 3·1혁명은 반제·자주독립과 민주공화주의를 연 현대사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심에 의암 손병희 선생이 존재한다. 우리 근현대사의 빛나는 성좌 중에 이 세 가지 역사적 과제에 참여하거나 주도한 인물은 의암 선생이 유일하다. 토론 좌장은 성주현 1923 제노사이드연구소 부소장이 맡았고, 주제1 「의암 손병희와 민족운동」 발표는 조규태 한성대 교수, 토론은 이시종 민화협 사무처장, 주제2 「3·1운동과 의암 손병희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 발표는 성강현 동의대 겸임교수, 토론은 조성운 동국대 겸임교수, 주제3 「의암 손병희의 독립국가사상」 발표는 임형진 경희대 교수, 토론은 조극훈 경기대 교수, 마지막으로 주제4 「한국독립운동과 의암 손병희의 역사적 평가」 발표는 박세준 덕성여대 교수, 토론은 김영진 경희대 교수가 발표했다. 박상종 천도교 교령은 “3세 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은 1919년 기미년이 오기 훨씬 전인 1912년부터 봉황각을 지으시고 전국의 인재를 양성해 3·1독립만세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3·1독립을 천도교만이 아닌 대한의 모든 국민들과 함께하고자 하셨습니다. 당시 국내 가장 큰 종단이었지만 오히려 타 종단 분들이 더 많이 참여해 주기를 배려해 주었습니다. (중략)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의암 성사님의 활동과 정신 그리고 업적이 더욱 더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5월 19일은 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년이다. 오전 11시 수운회관 옆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추모식과 학술문화제 등을 진행했으며, 수운회관 3층에서 2022년 동학학회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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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천 전철 1호선 연장 ·· ‘셔틀운행’ 절대 안 돼!

    올해 1월 3일 연천주민과 단체로 구성된 연천군발전비상대책위원회(상임대표 홍영표·허정식) 상임대표와 공동대표 7명은 김광철 연천군수와 최숭태 연천군의장을 방문해 동두천-연천구간 셔틀전철운행 결사반대하는 주민 의견을 전달했다. 2014년 10월 31일 지하철 1호선 연천역까지 연장하는 경원선 동두천~연천 전철 연장사업 기공식이 연천군 전곡역에서 열렸으며, 현재 82% 공사가 진행되어 올해 12월 개통을 앞두고 있다. 작년 11월 23일 연천군의회 정례회에서 김미경의원이 김광철 연천군수에게 군정질문하면서 착수 당시 열차 10량 (용산~연천) 왕복 88회 운행계획이었으나 한국철도공사가 사업성을 이유로 셔틀전철(동두천~연천) 6량 68회 운행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초 국토부 계획 무시한채 주민동의도 없이 한국철도공사의 경제성 앞세운 셔틀전철 운행 검토 .. 적극 반대! 이에 연천군민들이 최초 국토부 기본계획과 실시계획을 무시한채 철도운영기관인 한국철도공사가 주민 동의도 없이 운영의 효율성을 앞세우며 셔틀전철 운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한 지난 12월 27일 남병근 더불어민주당 동두천연천 지역위원장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동료의원들이 한국철도공사 방문해 연천군 주민의사를 전달하고, 한국철도공사가 셔틀전철 6량을 발주·입고한 사실을 확인했다. 연천군발전비상대책위원회는 현재 11개 단체 공동대표가 참여했고, 앞으로 주민 서명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최북단 접경지역 연천, 동북아 평화경제시대 전진기지로 근시안적인 경제성 논리로 왜곡되거나 축소되서는 안 돼! 최북단 접경지역에 위치한 연천군은 군사보호구역 및 각종 규제로 이중 삼중으로 발전의 족쇄가 채워져 있는 특별한 희생을 치룬 곳이며, 평화시대를 맞이해 남북교류와 대륙철도망 연결하는 본격적인 동북아 평화경제시대의 전진기지에 위치하고 있다. 연천은 경원선 남북한 철도복원사업에서도 경원선 핵심거점이다. 그런 점에서 연천 전철 1호선 연장사업이 최초 계획과 달리 근시안적인 경제성 논리로 왜곡되거나 축소되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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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년! ·· 동학학회 학술대회 개최

    지난 19일 오후 2시 천도교 수운회관 3층에서 「순국 100주년 기념 의암 손병희의 역사적 재조명」이란 주제로 동학학회와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공동주최한 2022년 동학학회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박상종 천도교 교령과 김재옥 (사)민족대표33인기념사회회 이사장 축사에 이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이 기조강연 「의암 손병희의 생애와 민족운동」을 발표했고, 발표문 중 ‘손병희와 3·1혁명’에서 인용했다. 개인의 신분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걸출한 민족의 지도자가 된 의암 손병희 선생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역사적 변혁을 주도한 중심 인물이다. 첫째는 동학군 북접 통령으로 임명되어 보국안민·광제창생·척왜척양의 기치아래 북접 1만 혁명군을 이끌고 관군·왜군과 싸운 치열한 혁명가이다. 둘째는 개벽·개화·제세구민·인내천·만인평등을 내세우며 창도한 동학의 3세 교조로서 서세동점의 격동기에 시대를 광정, 백성을 위무하고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여 민족종교의 발판을 만든 신실한 종교지도자이다. 셋째는 일제강점기에 국권회복을 위해 민족대표들을 결집, 민족대연합을 통해 세계 만방에 대한의 자주독립을 선포한 기미 3·1혁명을 주도한 독립운동의 선각자이다. 동학혁명이 반봉건·반외세 투쟁의 근대적 분기점이라면, 천도교 창설은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종교개혁의 시발점이고, 3·1혁명은 반제·자주독립과 민주공화주의를 연 현대사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심에 의암 손병희 선생이 존재한다. 우리 근현대사의 빛나는 성좌 중에 이 세 가지 역사적 과제에 참여하거나 주도한 인물은 의암 선생이 유일하다. 토론 좌장은 성주현 1923 제노사이드연구소 부소장이 맡았고, 주제1 「의암 손병희와 민족운동」 발표는 조규태 한성대 교수, 토론은 이시종 민화협 사무처장, 주제2 「3·1운동과 의암 손병희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 발표는 성강현 동의대 겸임교수, 토론은 조성운 동국대 겸임교수, 주제3 「의암 손병희의 독립국가사상」 발표는 임형진 경희대 교수, 토론은 조극훈 경기대 교수, 마지막으로 주제4 「한국독립운동과 의암 손병희의 역사적 평가」 발표는 박세준 덕성여대 교수, 토론은 김영진 경희대 교수가 발표했다. 박상종 천도교 교령은 “3세 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은 1919년 기미년이 오기 훨씬 전인 1912년부터 봉황각을 지으시고 전국의 인재를 양성해 3·1독립만세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3·1독립을 천도교만이 아닌 대한의 모든 국민들과 함께하고자 하셨습니다. 당시 국내 가장 큰 종단이었지만 오히려 타 종단 분들이 더 많이 참여해 주기를 배려해 주었습니다. (중략)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의암 성사님의 활동과 정신 그리고 업적이 더욱 더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5월 19일은 의암 손병희 순국 100주년이다. 오전 11시 수운회관 옆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추모식과 학술문화제 등을 진행했으며, 수운회관 3층에서 2022년 동학학회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청주3·1공원 ·· 2·8독립선언 기념식 개최

    지난 2월 8일 청주3·1공원에서 2·8독립선언 기념식을 독립유공자유족의대한민국건국회 동제사(회장 신환우) 주관으로 13명이 진행했다. 보은 동학혁명에서 순국한 신원록 선생의 손자 신명우 법무사가 사회를 맡았으며, 심의보 충청대 교수, 이승계 대한사랑충북본부장, 김범식 충청북도 도로사업소장 등 시민들이 참석했다. 103년전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일본에 유학하는 조선인 유학생으로 구성된 조선청년독립단은 일본 제국주의 심장인 동경의 조선YMCA 회관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독립을 선포했고, 2·8 독립선언서를 당시 일본 주재 각국 대사관과 일본 언론, 조선총독부 등에 전달했다. 2·8 독립선언은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에 조선의 청년들이 동경 한복판에서 대담하게 추진한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었고, 이와 같이 최후의 일인까지 영원한 혈전을 선포한 다음 약 390여 명이 본국(한국)으로 귀국해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서 젊은 청년들과 학생들이 주도로 3월 1일부터 시작한 ‘대한독립만세‘ 혁명을 선도했다. 이러한 한민족의 거족적인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지속되었으며, 이에 힘입은 독립투사들은 마침내 1919년 4월 11일 상해에 대한민국 입시정부를 건립했으며, 현재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 했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아버지 예관 신규식을 위시한 독립투사들이 1917년 민주와 공화의 국가 건국을 천명한 「대동단결선언」을 시발점으로 1919년 2월 1일 건국의 깃발을 들고 육탄혈전을 선포한 「대한독립선언」에 이어서 1919년 2월 8일 일제 심장부인 동경에서 「2.8독립선언」을 한 다음, 3월 1일을 시작으로 거족적인 독립혁명에 힘입은 독립투사들은 드디어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건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계획하고 실행한 예관 신규식은 동제사(同濟社) 요원들을 이미 본국·간도·연해주·일본 등 파견하여 독립투쟁을 고취시켰고, 재팬어드버타이저’(The Japan Advertiser)의 기사를 접한 동경유학생들은 미국의 한인 동포들 독립투쟁을 알게 되었으며 상해에 있는 동제사 하부 조직인 신한청년당원 이광수·장덕수·조소앙 등을 동경으로 밀파해 2.8 동경독립선언을 하게 지도했다.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http://kkum.prkorea.com/2-8-proclamation/ 에서 2.8독립선언서의 현대 한국어 번역을 인용했다. 선언서 모든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이천만 조선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을 선언한다. 4300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 겨레는 실로 세계 최고의 문명 민족 중 하나다. 비록 한때 중국의 정삭을 받든 적은 있었으나 이는 양국황실의 형식적 외교 관계에 지나지 아니하였고 조선은 늘 우리 겨레의 조선이오 한 차례도 통일국가를 잃고 다른 민족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 (중략) 이같이 우리 겨레는 일본 군국주의적 야심의 사기와 폭력 아래 우리 겨레의 뜻에 반하는 운명을 맞았으니 정의로 세계를 바꾸고 있는 이 때에 당연히 이를 바로잡기를 세계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 또 오늘 세계 개조의 주인이 되는 미국과 영국은 보호와 합병을 앞장서 승인한 까닭으로 지난날의 과오를 씻을 의무가 있다. (중략) 어느 면으로 봐도 우리 겨레와 일본인과 이해는 서로 배치되며 항상 그 피해를 받는 자는 우리 겨레이니 우리 겨레는 생존의 권리를 위하여 독립을 주장한다. (중략) 우리는 정당한 방법으로 우리 겨레의 자유를 추구할 것이나 만일 이로써 성공치 못하면 우리 겨레는 생존의 권리를 위하여 온갖 자유행동을 취하여 최후의 일인까지 자유를 위해 뜨거운 피를 흘릴지니 어찌 동양평화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우리 겨레에겐 한 명의 병사도 없다. 병력으로 일본에게 맞설 물리력이 없다. 그러나 만약 일본이 우리 겨레의 정당한 요구에 불응한다면 우리 겨레는 일본에 대하여 영원한 혈전을 선언하리라. (중략) 이에 우리 겨레는 일본이나 혹은 세계 각국이 우리 겨레에게 민족자결의 기회를 주길 요구하며 만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겨레는 생존을 위해 자유행동을 취하여 우리 겨레의 독립을 이룩할 것을 선언한다. <결의문> 1. 재일본동경조선청년독립단은 한일합병이 우리 겨레의 자유의사에서 나오지 않고 우리 겨레의 생존발전을 위협하고 동양평화를 뒤흔들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독립을 주장함. 2. 본단은 일본 의회와 정부에 조선민족대회를 소집하여 대회의 결의로 우리 겨레의 운명을 결정할 기회가 생기기를 요구함. 3. 본단은 만국평화회의에 민족자결주의를 우리 민족에게 적용하기를 요구함.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본에 주재한 각국 대사에게 본단의 의사를 각 해당 정부에 전달하기를 의뢰하고 동시에 위원 2인을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함. 이 위원은 앞서 파견된 우리 민족의 위원과 행동을 같이함. 4. 앞의 모든 항목의 요구가 실패할 때에는 우리 겨레는 일본에 대하여 영원의 혈전을 선언함. 이로써 발생하는 참화는 우리 민족이 그 책임을 지지 아니함. 재일본 동경 조선청년독립단 대표 右 代表者 崔八鏞(최팔용), 李琮根(이종근), 金度演(김도연), 宋繼白(송계백), 李光洙(이광수), 崔謹愚(최근우), 金喆壽(김철수), 金尙德(김상덕), 白寬洙(백관수), 徐椿(서춘), 尹昌錫(윤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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