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5-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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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동학선언문 ·· 도올 김용옥 선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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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정환 05-09 00:30

    [전문] 동학선언문 ·· 도올 김용옥 선포하다

    (기) 동학은 전쟁이 아닙니다 동학은 전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평화를 향한 민중의 갈망입니다. (승) 1894년 동학혁명에서 ·· 3·1만세독립혁명을 거쳐 정읍의 황토현, 강원도 홍천의 자작고개, 공주의 우금치, 장흥의 석대뜰 등등으로 상징되는 1894년 갑오년 전국의 전장에서 최소한 30만 이상의 흰 옷을 입은 조선의 민중들이 쓰러졌습니다. 그들 앞에는 초라한 관군과 합세한 왜놈들의 대거병력이 기관총을 앞세우고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흰 옷을 입은 민중들이 그 앞을 죽창 하나 든 몸으로 나아갔습니다. 당시 토벌대장 김규태는 진중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서로 앞을 다투어 수만 명의 농민군들이 산등성이로 올라왔다. 도대체 저들은 무슨 의리와 무슨 담략을 지녔기에 저리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그때 저들의 정황과 자취를 기록하려 하니 생각만 해도 뼈골이 떨리고 마음이 서늘해 진다.” 그들은 과연 죽음을 향해 돌진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삶을 쟁취하기 위하여 죽음의 모든 권세를 짓밟고, 생명의 땅으로 다시 개벽의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당시 서울에 와 있었던 왕립지리학회 회원 이사벨라 버드 비숍여사는 동학혁명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동학군은 너무도 확고하고 이성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어서, 나는 그들의 지도자들을 반란자들이라기보다는 무장한 개혁자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들은 외국인인 내가 봐도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을 주장했다. 그 모든 것이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사랑의 궁극적 의미는 평화이지만, 사랑은 평화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구체적인 대상에 국한될 때 편협한 집착으로 퇴락하기 마련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한 사랑은 고린도에 있던 작은 크리스천 공동체 내부의 성원들끼리의 화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아니하며 자랑치 아니하며 교만치 아니하며 거칠지 아니하다” 하였지만, 사랑은 그러한 감정의 부드러운 상태를 가르키는데 머물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를 무화(無化)시키는 데서 출발합니다. 자아의 모든 집착으로부터 해방되는 태허(太虛)의 무한한 포용에 자기를 던지는 순간, 사랑은 달성됩니다. 이러한 사랑을 나는 평화라고 부릅니다. 진리도, 선함도, 아름다움도 평화를 상실하면 불이 나게 됩니다. 평화가 없으면 진선미라는 모든 문명의 가치가 잔인하고 경직되고 몰인정하게 되고 맙니다. 예수는 바울과는 달리 대망종말공동체 내부의 사람들끼리의 사랑을 외치지 않았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갈릴리평원의 인간 모두를 향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오직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만,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즉각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무화시키는 것입니다. 존재자로서의 하느님이라고 하는 실체가 시공의 변화 속으로 사라질 때만이 하느님 사랑은 달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놈들의 총구 앞으로 나아간 조선의 민중은 무아의 해탈을 성취했습니다. 하느님이라는 존재, 그 실체를 무아의 평화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동학은 19세기 중엽 경주 용담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자라난 최수운이라는 한 청년의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된 사회운동이지만, 그것은 결코 단순한 종교운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고조선으로부터 내려오는 광활한 조선대륙의 삶의 총체가 응축된 정신문화가 일시에 폭발하여 만들어 낸 새로운 혼백의 결정체였습니다. 고구려의 핏줄을 타고 흘러내린 유구한 유불선의 전통이 융합된 토양 위에서 합리적 정신을 우주의 신비와 결합시킨 신유학의 심성론의 원칙들을 철저히 고수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해탈하는 자유자재로운 정신의 열정이었습니다. 그 열정이 서세동점의 대세를 타고 들어온 서학과 맞닥뜨리면서 보국안민의 우환 속에서 자각과 자생과 자주를 외칠 수 밖에 없었던 새로운 각성의 떨림, 그 포효였습니다. 그것은 조선왕조 500년을 통하여 신흥지배세력이 민중을 억누르기 위하여 내세운 사대와 계층적 언분 그리고 귀족정치화 되어간 왕정의 폐해로부터 그 본질을 전복하려는 민중혁명의 강력한 테제였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러한 테제를 일깨운 것은 서학, 즉 천주학이었습니다. 천주학은 서강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가장 적절한 명분이었으며 보편성을 위장한 영혼의 파멸이었습니다. 수운은 이 천주, 즉 하느님과의 대결을 선포했습니다. 천주학은 천주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수운은 이러한 평등사상을 통하여 자신의 우수한 유학 선배들이 서학에 매료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학의 경전을 탐독한 수운은 그러한 평등관의 배면에 변함없이 초월적 독재자 천주가 엄존한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가장 본질적인 사실은 인간을 억누르는 권위주의적 이념들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다는데 있습니다. 그 이념들의 총체, 그 근원, 그 이념 중의 이념이 곧 야훼 혹은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만유에 군림하는 천주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수운은 선포합니다. “인간의 평등는 오로지 인간이 하느님과 평등할 때 달성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수운의 포효에 대해 세계의 크리스천들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기독교는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겸손을 가르친다.” 수운은 다시 말합니다. “겸손해야 할 주체는 우리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야훼는 민족신이고 전쟁신이며 질투하는 하느님이고 호오(好惡)가 확실한 하느님이며 인간집단을 도륙하는데 하등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이 정의를 결하면 그것은 하찮은 우상에 불과합니다. 민족에 대한 호오가 있는 하나님은 특정한 문명권 밖으로 수출되어서는 아니되는 하느님입니다. 예수는 이러한 하느님을 거부했습니다. 야훼는 하느님의 자격이 없는 우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을 뒤엎었습니다. 즉 다윗왕의 보디가드 노릇을 하는 야훼를 축출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는 다윗왕권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예수를 다윗의 후계자로 만들고 그를 메시아로 조작했습니다. 수운은 이러한 조작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서양의 사람들은 천주의 뜻을 빙자하여 좋은 일을 베푸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천하를 공취(攻取)하려 한다.” 수운은 초월적인 인격체로서의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해후로부터 1년간 자기검증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하느님은 인격성을 초월하는 존재 그 자체이어야 한다. 어찌 하늘 꼭대기에 상재님이 옥경대에 계시다고 보는 듯이 말을 할꼬?” 인격성이 거부된다는 것은 인간세의 호오에 좌우되지 않는 정의로운 공평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수운은 그러한 하느님의 특성을 무위이화라고 표현했습니다. 노자가 말하는 도법자연과 같은 뜻이지요. 니체는 하느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수운은 하느님을 살려내려 했습니다. 모든 시스템의 감금으로부터 하느님을 탈옥시켰습니다. 모든 관념과 언어의 폭력과 제도의 권위와 예식적 허위로부터 하느님을 탈출시켰습니다. 이러한 탈출을 이미 조선사람들은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읽고 있을 바로 그 시점에 성공시켰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하느님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개벽세상을 열었습니다. 조선의 민중은 극렬한 탄압 속에서도 이 수운의 혁명사상을 조선 팔도 전체의 레지스탕스 운동으로 구현해 나갔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보는 시각 중에서 가장 불행한 학계의 왜곡 중에 하나가 ‘북접이니 남접이니’ 하는 편당의식을 가지고 혁명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동학혁명을 흐르는 정신은 단 하나. 수운의 시천주로부터 시작하여 해월의 향아설위에 이르는 인본의 플레타르키아 사상입니다. 전라도에서 궐기한 사람들을 정치적, 사회적 항거로서만 분석하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전라도에는 전라도 나름대로의 특별한 역사환경이 있었지만, 동학은 이미 전국민의 신념체계로써 보편화되어 있었고, 그 보편적 조직을 관장한 사람은 제2대 선생님 해월 최시형이었습니다.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 어린이를 때리는 것은 하느님을 때리는 것이다. 하느님은 매맞기를 싫어하신단다.”, “베를 누가 짜고 있느냐?”, “제 며느리가 짜고 있습니다.”, “아니다. 하느님이 짜고 계시나니라.”, “일체의 사람을 하느님으로 대하라. 손님이 오거든 하느님이 오셨다 하라.”, “타인의 시비를 말하지 말라. 이는 천주를 시비함이라.”, “네가 먹는 밥 한 숟가락. 그것이 곧 하느님이니라. 온 생명의 근원이니라.” “제사상은 청수 한 그릇으로 족하니라. 청수 한 그릇이야말로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수없는 해월의 설법은 너무도 쉽게 민중의 가슴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녹두 전봉준 장군은 해월에 의하여 고부접주로 임명된 사람입니다. 전봉준은 죽기전 공초(供草)에서 “접주를 임명할 수 있는 사람은 해월 법헌 한 사람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동학이라는게 무슨 주의가 있느냐?”라는 질문에, “동학은 수신하여 충효로 본을 삼고 보국안민하자는 것뿐이외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너는 동학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동학은 나의 마음을 지킬 수 있게 하고 하느님을 공경케 하는 도이므로, 심히 좋아하나이다.” 전봉준은 동학사상의 신봉자로서 전주 삼례 교조신원운동에서 이미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전봉준은 해월의 사상을 신뢰하고 따랐습니다. 거사를 바라보는 방법론의 차이에 근거하여 남접북접의 대립을 운운하는 것은 어리석은 소치입니다. 남접북접의 분별은 근원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해월의 전체를 통찰하는 신중함이 없었더라면 동학의 명맥은 깊게 단절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봉준의 구국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정확한 카이로스의 조선왕조의 뿌리를 근절시키는 대업을 성취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을 선포했습니다. 그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입니다.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체 평등임입니다. 이것은 외래사상을 수용한 결과가 아닙니다. 동학의 정신이 개화한 것입니다. 3·1만세독립혁명을 주관한 것도 동학이었습니다. 33인의 대표가 공주 의금치전투의 리더 의암 손병희였고, 33인 중 15명이 동학사람들이었으며, 그 중 9명이 동학혁명의 현장에서 일본군과 피 흘리며 싸웠습니다. 상해 임시정부를 이끈 백범 김구선생도 황해도 팔봉접주였습니다. 건준(조선건국준비위원회)을 만든 몽양 여운형선생도 그 뿌리가 동학에 있었습니다. 몽양의 작은 할아버지가 동학경전을 간행했습니다. 홍구공원에서 도시락폭탄을 터뜨려 세계를 놀라게 한 매헌 윤봉길도 충청도 동학리더 배성선의 훈도를 받았습니다. 배성선은 그의 장인이었습니다. (전) 동학은 젊습니다 동학은 젊습니다. 동학을 이끌어 간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30대의 청년들이었습니다. 수운이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참형을 당한 것도 만 40세에 이르기 이전이었고, 녹두장군이 서울에서 교수형을 당했을 때도 그의 나이 만 40이었습니다. 이들이 모두 30대 후반에 활동을 했습니다. 그들의 물리적 나이가 어떠하든지간에 수운과 더불어 다시개벽의 노래를 부른 모든 사람들이 젊었습니다. 젊음은 비극에 물들지 않는 영혼입니다. 그래서 청춘은 비극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청춘은 비극을 선명하게 인식하면서도 비극의 한가운데로 자신을 던집니다. 그리고 자기를 잊어버리며 자기를 초월합니다. 청춘이 비극에 도전할 때마다 비극은 그 이상을 도출시킵니다. 그 이상이 담지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의 항구성을 직관할 때 청춘은 평화에 도달합니다. 평화는 비극의 이해이며, 동시에 비극의 결실을 보존합니다. 비극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청춘은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청춘은 비극적 절망 속에서도 무아의 평화를 직관합니다. 고구려의 청춘이 동학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두 세기의 격랑 속에서도 동학은 조화로운 동귀일체의 중용을 달성했습니다. 평등의 새로운 인식과 아름다움의 도약과 자제할 줄 아는 자유의 감각을 생성했습니다. 평화는 정적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정은 동(動)의 정(靜)일 뿐입니다. 조화는 반복의 굴레를 넘어서는 신선한 것이어야 합니다. 젊음은 아름다움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때 사랑은 개체를 넘어서는 것이며 제한된 개체의 완벽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기를 극복하고 평화의 면류관을 쓸 때 문명은 활력을 획득하며 우리 인간에게 삶의 가치를 부여합니다. 문명은 망아적인 초월의 열정 속으로 침잠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되지만, 그 문명의 모든 사건에는 젊음의 꿈과 비극의 성과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동학의 모험은 청춘의 열정과 꿈으로부터 시작하여 비극적 아름다움을 수확했습니다. 동학은 우리 민족이 격한 열정을 지니면서도 항상 평화를 지향하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동학을 위해 생명을 바친 조선 동포들의 희생을 통해 인류는 결국 평화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인류는 우리가 왜 백의민족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결) 전세계의 인민들에게 호소합니다 전세계의 인민들에게 호소합니다. 남한과 북한의 화해는 인류평화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전쟁이나 대립을 원하지 않습니다. 남과 북의 동포들이 서로를 포용하며 휴전협정을 종료하고 심오한 평화의 관계 속에서 인류의 새로운 이상을 창조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우리는 너무도 기나 긴 냉전의 설상(雪霜) 속에서 억울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봄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동학은 성(誠)을 말합니다. 하늘과 인간의 성실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하느님을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세계의 전 인민들은 무책임한 일본의 방사능오염수 방류를 막아야 합니다. 동학이 이 시대를 향해 외치는 소리입니다. 이러한 양심적 세계인이 항변을 통해 이어질 것입니다. 봄은 오고 있습니다. 2021년 5월 11일 조선의 철학자 도올 김용옥 ▣ 다음의 도올TV URL을 누르시면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fCEe54cUI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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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원] 언론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대로 괜찮은가요? 이젠 국민이 나서서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국내 중앙지들의 편법을 제어할 유일한 방법, 최후의 수단인 ‘미디어 바우처’ 국민청원이 청와대 홈피에서 진행 중입니다. 청원기간은 4월13일부터 5월13일까지입니다. 지난달 A일보가 유가부수 조작으로 국민 세금을 연간 400여억원씩 도둑질해 온 사실이 발각되었습니다. 경찰이 수사 중이어서 A일보를 포함한 신문사 발행부수 뻥튀기로 세금을 불법 취득한 사실이 조만간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미디어 바우처’는 도둑질 당하는 세금을 국민독자에게 나눠주고 좋은 기사, 바른 기사를 쓴 기자나 신문사에 국민 독자가 직접 후원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지금 언론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미디어 바우처’를 실현할 수 있는 3박자가 확실히 갖춰졌습니다. 첫째, A일보 대국민 사기질로 개혁 명분이 자명해진 점. 둘째, 언론개혁 여망이 어느 때보다 고양되어 있는 점. 셋째, 미디어 바우처 법안을 거뜬히 통과시킬 180석 의석을 보유하고 있는 점.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이미 미디어 바우처 도입 법안 마련에 착수했습니다. 올해 안에 언론개혁 유일한 수단인 미디어 바우처법이 통과되려면, 우선 청와대 국민청원이 5월13일까지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아래의 URL을 누르면, [청와대 청원] ‘언론혁명을 위한 미디어 바우처 국민운동 제안’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7556?fbclid=IwAR36of73eht0JNtAGMmBI3Botdml1CAf8brns5zxo_MXTSm2ttZs3Gacv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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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주시 회천2동, 마을21개소 ‘아이스팩 전용수거함’ 설치

    양주시 회천2동(동장 홍미영)은 아이스팩 수거사업 확대하기 위해, 공동주택 등 21개소 거점지역에 아이스팩 전용수거함을 설치했다. 이번 사업은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 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아이스팩 사용량 급증으로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양주시 회천2동은 아이스팩에 대한 재활용 촉진을 유도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관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돕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아이스팩은 미세 플라스틱의 일종인 고흡수성수지로 제작돼 자연 분해가 어렵고 소각 또한 쉽지 않아, 환경오염 주범으로 여겨져 적극적인 수거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아이스팩 수거함 설치를 지켜보던 한 시민은 “아이스팩을 한 번만 사용하고 버리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집 가까운 곳에 아이스 팩을 배출할 수 있는 전용수거함을 설치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회천2동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그린뉴딜 정책이 우리 동네를 깨끗하게 만들고 환경보호에 큰 역할을 하는 만큼 관내 전역으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이스 팩을 기부에 참여를 희망하는 시민이나 기증받고 싶은 업체는 회천2동 행정복지센터(☎031-8082-7805)로 문의하면 된다.

    [단독] ‘두루미와 친구들’, 두루미 보호조치 없는 민통5초소 북상에 반대

    26일 오늘 두루미보호 민간단체인 ‘두루미와친구들’은 연천군 민원실에 ‘두루미 보호조치 없는 민통5초소 북상을 반대합니다’는 민원서를 제출했다. 현재 민통선 출입을 통제하는 민통5초소는 중면 행정복지센터 지나 300여 미터에 위치해 있다. 연강갤러리 앞으로 이전하면, 영농민과 안보마을 주민들은 출입절차가 없어져 편리하게 출입할 수 있다. 그렇지만 11월초부터 이듬해 3월 중순까지 임진강 상류에 월동하는 천연기념물인 두루미 보존·보호대책은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다. 두루미는 전세계 3,000여 개체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며 천연기념물 제202호이다. 추운 겨울엔 시베리아에 사는 1500여 개체 대부분이 해마다 우리나라 DMZ일대를 찾고 있다. 주요 서식지는 철원평야와 연천 임진강이며, 올 1월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 조사결과에 의하면 철원평야 1,126 개체, 연천 임진강 458 개체를 확인했다. 민통5초소 북상은 영농민과 안보마을 주민들 불편사항을 해소하면서 동시에 두루미 서식지를 보존하고 보호하는 2가지 원칙을 충족해야 한다. 앞으로 전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연천의 귀중한 자원으로 보호·육성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와 두루미가 공생하는 국제 생태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최근 연천군은 민통선 북상 확정하기 위해 군관계자와 꾸준히 협의하고 있다. 2018년 3월 연천군은 민통선 및 초소 북상 등 국방부와 28보병사단에 제안했고, 그해 12월 9일 협약서를 체결했다. 또 2018년 11월 29일 경기도 연천군의회 이영애의원이 “민통선 초소의 북상으로 연천군 자원인 천연기념물 두루미 및 재두루미 등 철새의 도래지와 서식지가 파괴되고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에 김광철 연천군수는 “두루미가 내려왔을 때 특별한 대책을 강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차량통행의 제한이라든가, 사람의 제한이라든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한 바 있다. 두루미 보호조치 없는 민통5초소 북상을 반대합니다 인간들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코로나19, 아프리카돼지열병, 조류인프루엔자가 발생하고 자연생태계는 그야말로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 연천은 태풍전망대 폐쇄, 민간인통제구역내 외부인 출입통제 등으로 생태환경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역시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연천 임진강 상류일대는 철원평야에 이어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두루미 국내 제2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1월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에서 연천군은 천연기념물 제202호 두루미 458마리와 제203호 재두루미 709마리 등 총 1,169마리가 관찰되었습니다. 2016년 군남댐 담수이후 임진강 장군여울 두루미서식지가 훼손되었으며, 최근 일부 주민과 외부 사진작가들의 무분별한 사진촬영으로 빙애여울마저 두루미 서식지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필승교 아래 임진강과 일부 백학면 등 서식지 이동으로 두루미가 편하게 지낼 수 없는 생태환경으로 치닫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구나 두루미 보호조치 없는 민통5초소 북상을 절대 반대합니다. 2018년 11월 29일 연천군의회 이영애의원이 ‘두루미 등에 대한 생태계 보호 방안도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김광철 연천군수가 ‘야간 통제와 차량통행 제한이나 사람 제한 등 특별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습니다. 현재 연천군이 두루미 보호를 위해 준비한 특별대책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고 두루미 보호 안전장치에 대한 확실한 답변과 납득할만한 조치가 없는 한 민통5초소 북상을 절대 반대합니다. 2021년 2월 26일 두루미와 친구들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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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 동학선언문 ·· 도올 김용옥 선포하다

    (기) 동학은 전쟁이 아닙니다 동학은 전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평화를 향한 민중의 갈망입니다. (승) 1894년 동학혁명에서 ·· 3·1만세독립혁명을 거쳐 정읍의 황토현, 강원도 홍천의 자작고개, 공주의 우금치, 장흥의 석대뜰 등등으로 상징되는 1894년 갑오년 전국의 전장에서 최소한 30만 이상의 흰 옷을 입은 조선의 민중들이 쓰러졌습니다. 그들 앞에는 초라한 관군과 합세한 왜놈들의 대거병력이 기관총을 앞세우고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흰 옷을 입은 민중들이 그 앞을 죽창 하나 든 몸으로 나아갔습니다. 당시 토벌대장 김규태는 진중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서로 앞을 다투어 수만 명의 농민군들이 산등성이로 올라왔다. 도대체 저들은 무슨 의리와 무슨 담략을 지녔기에 저리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그때 저들의 정황과 자취를 기록하려 하니 생각만 해도 뼈골이 떨리고 마음이 서늘해 진다.” 그들은 과연 죽음을 향해 돌진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삶을 쟁취하기 위하여 죽음의 모든 권세를 짓밟고, 생명의 땅으로 다시 개벽의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당시 서울에 와 있었던 왕립지리학회 회원 이사벨라 버드 비숍여사는 동학혁명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동학군은 너무도 확고하고 이성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어서, 나는 그들의 지도자들을 반란자들이라기보다는 무장한 개혁자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들은 외국인인 내가 봐도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을 주장했다. 그 모든 것이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사랑의 궁극적 의미는 평화이지만, 사랑은 평화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구체적인 대상에 국한될 때 편협한 집착으로 퇴락하기 마련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한 사랑은 고린도에 있던 작은 크리스천 공동체 내부의 성원들끼리의 화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아니하며 자랑치 아니하며 교만치 아니하며 거칠지 아니하다” 하였지만, 사랑은 그러한 감정의 부드러운 상태를 가르키는데 머물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를 무화(無化)시키는 데서 출발합니다. 자아의 모든 집착으로부터 해방되는 태허(太虛)의 무한한 포용에 자기를 던지는 순간, 사랑은 달성됩니다. 이러한 사랑을 나는 평화라고 부릅니다. 진리도, 선함도, 아름다움도 평화를 상실하면 불이 나게 됩니다. 평화가 없으면 진선미라는 모든 문명의 가치가 잔인하고 경직되고 몰인정하게 되고 맙니다. 예수는 바울과는 달리 대망종말공동체 내부의 사람들끼리의 사랑을 외치지 않았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갈릴리평원의 인간 모두를 향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오직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만,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즉각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무화시키는 것입니다. 존재자로서의 하느님이라고 하는 실체가 시공의 변화 속으로 사라질 때만이 하느님 사랑은 달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놈들의 총구 앞으로 나아간 조선의 민중은 무아의 해탈을 성취했습니다. 하느님이라는 존재, 그 실체를 무아의 평화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동학은 19세기 중엽 경주 용담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자라난 최수운이라는 한 청년의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된 사회운동이지만, 그것은 결코 단순한 종교운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고조선으로부터 내려오는 광활한 조선대륙의 삶의 총체가 응축된 정신문화가 일시에 폭발하여 만들어 낸 새로운 혼백의 결정체였습니다. 고구려의 핏줄을 타고 흘러내린 유구한 유불선의 전통이 융합된 토양 위에서 합리적 정신을 우주의 신비와 결합시킨 신유학의 심성론의 원칙들을 철저히 고수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해탈하는 자유자재로운 정신의 열정이었습니다. 그 열정이 서세동점의 대세를 타고 들어온 서학과 맞닥뜨리면서 보국안민의 우환 속에서 자각과 자생과 자주를 외칠 수 밖에 없었던 새로운 각성의 떨림, 그 포효였습니다. 그것은 조선왕조 500년을 통하여 신흥지배세력이 민중을 억누르기 위하여 내세운 사대와 계층적 언분 그리고 귀족정치화 되어간 왕정의 폐해로부터 그 본질을 전복하려는 민중혁명의 강력한 테제였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러한 테제를 일깨운 것은 서학, 즉 천주학이었습니다. 천주학은 서강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가장 적절한 명분이었으며 보편성을 위장한 영혼의 파멸이었습니다. 수운은 이 천주, 즉 하느님과의 대결을 선포했습니다. 천주학은 천주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수운은 이러한 평등사상을 통하여 자신의 우수한 유학 선배들이 서학에 매료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학의 경전을 탐독한 수운은 그러한 평등관의 배면에 변함없이 초월적 독재자 천주가 엄존한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가장 본질적인 사실은 인간을 억누르는 권위주의적 이념들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다는데 있습니다. 그 이념들의 총체, 그 근원, 그 이념 중의 이념이 곧 야훼 혹은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만유에 군림하는 천주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수운은 선포합니다. “인간의 평등는 오로지 인간이 하느님과 평등할 때 달성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수운의 포효에 대해 세계의 크리스천들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기독교는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겸손을 가르친다.” 수운은 다시 말합니다. “겸손해야 할 주체는 우리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야훼는 민족신이고 전쟁신이며 질투하는 하느님이고 호오(好惡)가 확실한 하느님이며 인간집단을 도륙하는데 하등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이 정의를 결하면 그것은 하찮은 우상에 불과합니다. 민족에 대한 호오가 있는 하나님은 특정한 문명권 밖으로 수출되어서는 아니되는 하느님입니다. 예수는 이러한 하느님을 거부했습니다. 야훼는 하느님의 자격이 없는 우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을 뒤엎었습니다. 즉 다윗왕의 보디가드 노릇을 하는 야훼를 축출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는 다윗왕권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예수를 다윗의 후계자로 만들고 그를 메시아로 조작했습니다. 수운은 이러한 조작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서양의 사람들은 천주의 뜻을 빙자하여 좋은 일을 베푸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천하를 공취(攻取)하려 한다.” 수운은 초월적인 인격체로서의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해후로부터 1년간 자기검증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하느님은 인격성을 초월하는 존재 그 자체이어야 한다. 어찌 하늘 꼭대기에 상재님이 옥경대에 계시다고 보는 듯이 말을 할꼬?” 인격성이 거부된다는 것은 인간세의 호오에 좌우되지 않는 정의로운 공평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수운은 그러한 하느님의 특성을 무위이화라고 표현했습니다. 노자가 말하는 도법자연과 같은 뜻이지요. 니체는 하느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수운은 하느님을 살려내려 했습니다. 모든 시스템의 감금으로부터 하느님을 탈옥시켰습니다. 모든 관념과 언어의 폭력과 제도의 권위와 예식적 허위로부터 하느님을 탈출시켰습니다. 이러한 탈출을 이미 조선사람들은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읽고 있을 바로 그 시점에 성공시켰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하느님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개벽세상을 열었습니다. 조선의 민중은 극렬한 탄압 속에서도 이 수운의 혁명사상을 조선 팔도 전체의 레지스탕스 운동으로 구현해 나갔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보는 시각 중에서 가장 불행한 학계의 왜곡 중에 하나가 ‘북접이니 남접이니’ 하는 편당의식을 가지고 혁명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동학혁명을 흐르는 정신은 단 하나. 수운의 시천주로부터 시작하여 해월의 향아설위에 이르는 인본의 플레타르키아 사상입니다. 전라도에서 궐기한 사람들을 정치적, 사회적 항거로서만 분석하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전라도에는 전라도 나름대로의 특별한 역사환경이 있었지만, 동학은 이미 전국민의 신념체계로써 보편화되어 있었고, 그 보편적 조직을 관장한 사람은 제2대 선생님 해월 최시형이었습니다.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 어린이를 때리는 것은 하느님을 때리는 것이다. 하느님은 매맞기를 싫어하신단다.”, “베를 누가 짜고 있느냐?”, “제 며느리가 짜고 있습니다.”, “아니다. 하느님이 짜고 계시나니라.”, “일체의 사람을 하느님으로 대하라. 손님이 오거든 하느님이 오셨다 하라.”, “타인의 시비를 말하지 말라. 이는 천주를 시비함이라.”, “네가 먹는 밥 한 숟가락. 그것이 곧 하느님이니라. 온 생명의 근원이니라.” “제사상은 청수 한 그릇으로 족하니라. 청수 한 그릇이야말로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수없는 해월의 설법은 너무도 쉽게 민중의 가슴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녹두 전봉준 장군은 해월에 의하여 고부접주로 임명된 사람입니다. 전봉준은 죽기전 공초(供草)에서 “접주를 임명할 수 있는 사람은 해월 법헌 한 사람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동학이라는게 무슨 주의가 있느냐?”라는 질문에, “동학은 수신하여 충효로 본을 삼고 보국안민하자는 것뿐이외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너는 동학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동학은 나의 마음을 지킬 수 있게 하고 하느님을 공경케 하는 도이므로, 심히 좋아하나이다.” 전봉준은 동학사상의 신봉자로서 전주 삼례 교조신원운동에서 이미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전봉준은 해월의 사상을 신뢰하고 따랐습니다. 거사를 바라보는 방법론의 차이에 근거하여 남접북접의 대립을 운운하는 것은 어리석은 소치입니다. 남접북접의 분별은 근원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해월의 전체를 통찰하는 신중함이 없었더라면 동학의 명맥은 깊게 단절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봉준의 구국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정확한 카이로스의 조선왕조의 뿌리를 근절시키는 대업을 성취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을 선포했습니다. 그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입니다.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체 평등임입니다. 이것은 외래사상을 수용한 결과가 아닙니다. 동학의 정신이 개화한 것입니다. 3·1만세독립혁명을 주관한 것도 동학이었습니다. 33인의 대표가 공주 의금치전투의 리더 의암 손병희였고, 33인 중 15명이 동학사람들이었으며, 그 중 9명이 동학혁명의 현장에서 일본군과 피 흘리며 싸웠습니다. 상해 임시정부를 이끈 백범 김구선생도 황해도 팔봉접주였습니다. 건준(조선건국준비위원회)을 만든 몽양 여운형선생도 그 뿌리가 동학에 있었습니다. 몽양의 작은 할아버지가 동학경전을 간행했습니다. 홍구공원에서 도시락폭탄을 터뜨려 세계를 놀라게 한 매헌 윤봉길도 충청도 동학리더 배성선의 훈도를 받았습니다. 배성선은 그의 장인이었습니다. (전) 동학은 젊습니다 동학은 젊습니다. 동학을 이끌어 간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30대의 청년들이었습니다. 수운이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참형을 당한 것도 만 40세에 이르기 이전이었고, 녹두장군이 서울에서 교수형을 당했을 때도 그의 나이 만 40이었습니다. 이들이 모두 30대 후반에 활동을 했습니다. 그들의 물리적 나이가 어떠하든지간에 수운과 더불어 다시개벽의 노래를 부른 모든 사람들이 젊었습니다. 젊음은 비극에 물들지 않는 영혼입니다. 그래서 청춘은 비극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청춘은 비극을 선명하게 인식하면서도 비극의 한가운데로 자신을 던집니다. 그리고 자기를 잊어버리며 자기를 초월합니다. 청춘이 비극에 도전할 때마다 비극은 그 이상을 도출시킵니다. 그 이상이 담지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의 항구성을 직관할 때 청춘은 평화에 도달합니다. 평화는 비극의 이해이며, 동시에 비극의 결실을 보존합니다. 비극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청춘은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청춘은 비극적 절망 속에서도 무아의 평화를 직관합니다. 고구려의 청춘이 동학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두 세기의 격랑 속에서도 동학은 조화로운 동귀일체의 중용을 달성했습니다. 평등의 새로운 인식과 아름다움의 도약과 자제할 줄 아는 자유의 감각을 생성했습니다. 평화는 정적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정은 동(動)의 정(靜)일 뿐입니다. 조화는 반복의 굴레를 넘어서는 신선한 것이어야 합니다. 젊음은 아름다움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때 사랑은 개체를 넘어서는 것이며 제한된 개체의 완벽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기를 극복하고 평화의 면류관을 쓸 때 문명은 활력을 획득하며 우리 인간에게 삶의 가치를 부여합니다. 문명은 망아적인 초월의 열정 속으로 침잠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되지만, 그 문명의 모든 사건에는 젊음의 꿈과 비극의 성과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동학의 모험은 청춘의 열정과 꿈으로부터 시작하여 비극적 아름다움을 수확했습니다. 동학은 우리 민족이 격한 열정을 지니면서도 항상 평화를 지향하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동학을 위해 생명을 바친 조선 동포들의 희생을 통해 인류는 결국 평화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인류는 우리가 왜 백의민족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결) 전세계의 인민들에게 호소합니다 전세계의 인민들에게 호소합니다. 남한과 북한의 화해는 인류평화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전쟁이나 대립을 원하지 않습니다. 남과 북의 동포들이 서로를 포용하며 휴전협정을 종료하고 심오한 평화의 관계 속에서 인류의 새로운 이상을 창조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우리는 너무도 기나 긴 냉전의 설상(雪霜) 속에서 억울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봄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동학은 성(誠)을 말합니다. 하늘과 인간의 성실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하느님을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세계의 전 인민들은 무책임한 일본의 방사능오염수 방류를 막아야 합니다. 동학이 이 시대를 향해 외치는 소리입니다. 이러한 양심적 세계인이 항변을 통해 이어질 것입니다. 봄은 오고 있습니다. 2021년 5월 11일 조선의 철학자 도올 김용옥 ▣ 다음의 도올TV URL을 누르시면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fCEe54cUI8

    연천군에서 ‘4.27 판문점선언’ 3주년 기념행사 개최

    (사)공정평화통일국민연대(이사장 권혁식)가 4월 24일 연천군에서 통일부 후원으로 ‘4.27 판문점선언’ 3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사전행사로 임진강에서 평화통일 기원하는 ‘인간 띠 잇기’ 및 통일문화 행사를, 본행사는 연천 수레울아트홀에서 진행했다. 본행사는 「시민운동 측면에서 바라본 한반도 평화구축 모색방안」 주제 토론회와 연천지회(회장 오명춘) 창립식을 함께 진행했다. 토론회는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이 기조 발제 후, 박성묵 공평연 충남지부장과 박용석 연천지부 회원의 열띤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소병훈 국회의원, 윤영찬 국회의원, 정동균 양평군수, 이항진 여주시장 등 여러 국회의원, 광역·기초 자치단체장 영상 축사가 있었다. 특히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축사에서 “최접경지역인 연천군에서 평화와 통일, 공정한 사회를 향한 열정으로 공평연 지회가 창립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고 축하할 일이다”고 격려했다. 박충식·서희정 연천군의원이 참석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서희정 연천군의원은 “접경지역인 우리 연천군에서 이런 뜻깊은 통일행사를 해서 기뻤고, 특히 북측에서 흘러 내려오는 임진강 강가에서 통일을 기원하며 인간 띠를 잇고 선 모습을 보니 감동적이었다. 공정과 평화의 기치 아래 힘찬 시동을 건 공평연 연천지회의 활약에 함께 힘을 보태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보물 지정 예고

    유형문화재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揚州 檜岩寺址 舍利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무주 한풍루(茂朱 寒風樓)」 30일 예고 기간 검토후 ‘보물’ 지정 예정 문화재청은 오늘 20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揚州 檜岩寺址 舍利塔)」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무주 한풍루(茂朱 寒風樓)」 문화재 2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무주 한풍루」, 등 2건을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이하 사리탑)은 조선 전기 왕실에서 발원하여 건립한 진신사리탑으로 규모가 장대할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도 양호하며, 사리탑의 형식과 불교미술의 도상, 장식문양 등 왕실 불교미술의 여러 요소를 알 수 있는 귀중한 탑이다. 전체적인 양식과 조영기법, 세부 문양들이 조선 전기의 왕릉을 비롯한 왕실 관련 석조물과 비슷하며, 사리탑의 규모, 치석 상태, 결구 수법 등을 고려할 때 당대 최고의 석공이 설계․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문화재는 조선 전기 석조미술의 정수이자 대표작으로 역사, 학술, 조형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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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주시, ‘2021 양주시민 혁신 프로젝트’ 1차 워크숍 개최

    양주시는 7일 양주혁신리빙랩센터에서 시민주도형 ‘2021 양주시민 혁신 프로젝트’ 1차 워크숍을 개최했다. 리빙랩 프로젝트는 양주시에 거주하거나 직장·학교 등 생활하는 시민들이 참여해 지역 곳곳에서 경험하는 사회문제를 직접 발굴하고 능동적 참여해 해결하는 시민주도형 혁신프로젝트다. 올해 3년차 맞이해 시민주도 혁신정책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선정된 5개 과제는 ▲양주시 꿈드림 자립플랫폼 ‘서다’팀의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꿈드림 자립찾기 ‘JOB多한 이야기’, ▲‘행복마을 연구소Ⅱ’팀의 ‘방성2리 동이마을 활성화(아이템, 마케팅)’, ▲‘요주의 인물’팀의 ‘청년 네트워크의 지속 및 활동 활성화 방안’, ▲‘복지그린빌라’팀의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아파트 실버 택배’, ▲‘봉양동 살리기 주민 모임’팀의 ‘봉양동 혐오시설 환경개선 사업’ 이다. 이날 워크숍에 참여한 참가자들은 문제정의와 개선 방향성을 도출하고 과제별 가상모델을 구축, 핵심 전략을 추출했다. 양주시는 과제별 지원 청년코디 5명(예원예술대학교 학생)을 비롯 서비스 디자이너 4명(크리에이티브 다다), 시민 등과 함께 2차례 추가 워크숍을 갖고 아이디어 발산, 시제품 제작 등 문제해결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찾아가는 의정부學 특강’·· 가상현실 체험까지

    양성된 의정부學 큐레이터, 초등학생 특강 본격화 초등학생들에게 가상현실 동영상으로 다양한 학습 경험 제공 (재)의정부시평생학습원(초대원장 송원찬)은 의정부 관내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의정부 역사와 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찾아가는 의정부학 특강’을 시작했다. 의정부 관내 34개 초등학교 중 25개 학교가 신청했으며, 올해 4월부터 3학년 1학기 사회 교과과정의 일부로 의정부학 큐레이터가 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찾아가는 의정부학 특강’은 이론과 체험활동으로 구성되며, 체험활동은 의정부시 유래와 역사, 인물, 지명, 시설 등을 재미있는 그림과 사진을 활용하고, 퀴즈, 퍼즐맞추기, 카드놀이 등 다양한 활동이 있다. 특히 VR(가상현실) 동영상을 종이안경을 통해 코로나 상황에서 직접 현장에 가지 않고도 가상 세계에서 주요 시설과 문화재를 경험할 수 있다. 다음은 의정부평생학습원 유튜브에 가상현실 체험할 수 있는 동영상, 【의정부학 VR체험】 의정부미술도서관이다. 누르면 바로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sLa1CRdj8U ‘의정부학 큐레이터’, 학습형 일자리의 대표적 모범사례 지자체 최초 평생교육재단 출범 효과 ‘톡톡’ 의정부학 특강은 의정부학 큐레이터가 진행하고 있며, 현재 의정부학 큐레이터 17명이 있다. 이들은 2018년 의정부지역학 큐레이터양성과정을 이수한 22명 중 의정부시평생학습원 「희망도시 의정부학」사업중 큐레이터 역량강화 교육을 꾸준하게 공부한 지역학 전문가들이다. 양성된 의정부학 큐레이터들이 올해 초등학생 특강을 본격 시작했으며, 이는 학습형 일자리의 대표적 모범사례이다. 2019년 지자체 최초 평생교육재단을 출범한 효과가 점차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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