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5(일)
 

[편집자주] 지난 5월 15일과 16일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선생이 화전민으로 살았던 포항 신광면 검곡에서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선생이 득도했던 경주 현곡면 가정리 용담정까지 도보순례에 함께 했다. 16일은 음력 4월 5일, 수운선생이 1860년 득도했던 날이다. 이번 도보순례는 수운살기(Living with Soowoon) 박동산대표가 기획하고 주관했다.

[동학을 걷는다. 검곡에서 용담까지] 4회에 걸쳐 연재한다. ① 검곡가는 길, ‘상마북저수지’에서 바라보다 ② ‘해월 최시형 선생님 말씀’, 신광면 만석삼거리 돌에 새겨 ③ 해월선생이 수운선생을 찾아간 ‘극적인 만남’ ④ 용담정까지 ·· 힘들었어도 끝까지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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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지도. 그래픽: 강정환] ⓒ통통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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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전통시장을 지나다 ⓒ통통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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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읍 하천을 가로질러 걷고 있다 ⓒ통통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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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강을 끼고 국도를 걸어가고 있다 ⓒ통통미디어

 

5월 16일 아침 7시 45분 안강읍에서 2일째 일정을 시작했다. 안강전통시장을 지나 안강읍을 동서로 흐르는 하천을 건넜다. 하천은 형산강과 만난다. 어제 피곤했던 발걸음이 아직도 무겁기만 하다. 보슬비가 내리다 멈추기를 어제처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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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읍 사방리에 들어서서 잠시 쉬고 있다 ⓒ통통미디어

 

안강읍 갑산리를 지나 사방리에 들어서자마자 길가 왼편 넓은 공간을 만나서,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지친 몸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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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살기 박동산대표가 해월선생이 박대여 집을 찾았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통통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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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산 대표 이야기가 끝나자 다시 걸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통통미디어

 

형산강을 왼편에 끼고서 걷고 또 걸었다. 박동산대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해월선생이 박대여의 집을 찾았던 수운선생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도올 김용옥이 지은 「동경대전 1」 166쪽에서 인용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수운선생은 1861년 6월에 포덕을 시작했고, 이때 찾아온 사람 중 하나가 해월선생(당시 최경상)이었다. 해월선생은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바로 이 길을 걸어다니면서 수운선생 가르침을 받았다. 

1861년 11월 수운선생은 전라도 남원 은적함으로 갔고 반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곳에서 「교훈가」, 「도수사」, 「권학가」, 「동학론(논학문)」, 「수덕문」, 「몽중노소문답가」 등 주요 저작들을 집필했다. 그러던 중 1862년 7월 초순 수운선생은 남원에서 돌아와 경주 박대여 집에 은둔하고 있었다. 

뜻밖에 해월이 홀연히 방문했던 것이다. 6개월이나 헤어져 전혀 소식을 모르는 상황에서 여기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왔더니, 그곳에 바로 수운선생이 있었다. 이심전심으로 만나게 되는 최초의 제자가 바로 해월선생이었다.

 

“6개월이나 헤어져서 전혀 소식을 모르는 상황에서, 너무나 그리워, 그리워, 마음에 짚이는 곳이 있어 가보았는데, 그곳에 바로 그가 있었다. 우리가 상사병에 걸린 남녀의 경우 만약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면 누구든지 기적 중의 기적이라 할 것이다” (도올 김용옥의 「동경대전 1」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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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한창 익어가는 청보리 ⓒ통통미디어

 

계획했던 일정이 지체되는 바람에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아침에 먹고 남았던 김밥으로 요기하면서 오로지 용담에 도착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걷기를 재촉했다. 걷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우비를 입었지만 결국 소나기를 피하지 못해 신발과 옷이 흠뻑 비에 젖었다. 

 

길을 걸으면서 한창 익어가는 청보리도 보았다. 국도를 따라 걷는 것은 힘이 들었지만 달리는 차 때문에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역시 안전 또 안전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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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을 걷는다. 검곡에서 용담까지] ③ 해월선생이 수운선생을 찾아간 ‘극적인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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