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1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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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양귀비, 바위구절초 [백두산]

백두 산정에 외롭게 피어나는 꽃들,,,

하늘이 내려와 한참을 놀다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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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바위취 [설악산]

산 정상 가뭄에도 이슬로 피어나는 별꽃

삶의 어두운 길에서 점멸하는 마음속 반딧불이처럼..

 

매서운 추위가 시작되는 1월, 옷깃을 여밀수록 나는 가장 뜨거웠던 생명의 기억을 떠올린다.

 

영하의 기온이 창문을 때리고 세상이 잿빛으로 웅크리는 이 계절이야말로, 오히려 뜨거운 생명력이 만들어낸 기적을 돌아보게 한다.


그것은 8년 전 백두산 정상의 칼바람 속에 피어난 두메양귀비, 5년 전 설악산 대청봉 바위 틈 가뭄 속에서 핀 참바위취, 그리고 4년 전 지리산 천왕봉과 한라산 윗세오름의 땡볕과 비바람을 견뎌낸 구절초와 설앵초의 강인하고도 눈부신 자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험준한 산 정상, 그 가장 가혹한 환경에서 피어났던 꽃들을 하나하나 되뇌어 본다.

 

그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다.

 

숨 막힐 듯한 고독과 고통의 순간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피어나는 법을 알려준, 내 삶의 고난과 역경의 길목마다 나를 비춰주던 '삶의 유도등'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카메라 셔터를 눌러 작품으로 남긴 그 꽃들은 이제 그 자리에 없다.

 

계절이 지나 꽃잎은 떨어지고 흙으로 돌아가 물리적인 실체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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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 [지리산]

마주한 능선 앞에 물러섬 없이

세상 바람에 흔들림 없이..

 

그리고 이 사라짐의 역설은 나의 가장 깊은 그리움, 지난 3월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재와 맞닿아 있다.

 

이제 나는 아버지를 뵐 수도, 그 따뜻한 손을 잡을 수도 없다.

 

산 정상의 꽃이 시들어 물러났듯, 아버지께서도 육신의 한계를 넘어 먼 여행을 떠나셨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물리적 부재가 곧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진 속 꽃들이 여전히 나에게 강인한 생명력으로 큰 힘을 주듯, 뵐 수 없는 아버지 역시 내 삶의 가장 견고한 정신적 지주로서 존재만으로도 큰 힘을 주고 계신다.

 

나는 이 신비로운 경험을 통해 확신한다.

 

눈에 보이는 꽃은 지고 아버지는 떠나셨지만, 우리 사이의 본질적인 연결은 영원히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연결은 혈연을 넘어선 영혼의 대화와도 같다.

 

꽃들이 극한을 이겨낸 강인한 생명력으로 작품 속에서 영원성을 얻었듯, 아버지 또한 당신의 평생에 걸친 헌신과 숭고한 사랑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다.

 

이것은 시공간과 물리적 거리를 초월한 초자연적인 연결이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존재의 모습은 어두운 삶의 길을 밝히는 꽃등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게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다.

 

꽃은 졌지만 그 향기는 내 마음에 문신처럼 새겨져, 영원히 접속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사라진 꽃과 뵐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 덕분에, 마음에 꽃을 가득 품은 진정한 부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 단절되지 않은 연결이 주는 에너지가 있기에, 나는 춥고 힘든 세상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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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앵초 {한라산]

혼자인 듯한 날들, 주저앉고 싶었던 날들

하늘은 꽃을 내밀며 함께해 주었지

   

이제 나는 이 충만한 에너지를 나 혼자만 누리지 않을 것이다.

 

추운 겨울날 건네는 따뜻한 오뎅 국물 한 컵처럼, 삶의 유도등이 되어준 꽃들과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누군가에게 온기를 나누는 삶을 살 것이다.

 

나를 비춘 그 영원한 불빛처럼, 타인의 어둠을 밝혀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접속'되어 나를 응원해 주는 영원한 그 힘을 믿으며, 나 또한 누군가의 유도등이 되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이다.

 

 

※ 본 기고문은 통통미디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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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꽃, 영원한 나의 유도등 [고홍곤의 야생화 에세이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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