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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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방 이야기가 아니다. 새해 들어 지역을 다니면서, 주민들과 만나며 드는 느낌이다. 주민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할 주체는 너무나 멀리 있어 손에 닿지 않은 정부도 아니고, 자신이 속한 정당과 라인에 목을 매며 정치적 이해득실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의원들도 아니고, 오직 자신들뿐이라는 해묵은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아 가고 있다.

 

 또한 주민은 의회나 행정부와 같은 공식적인 대의기구뿐 아니라, 비공식적 대의기구라 믿었던 시민단체조차 더는 자신들의 삶의 문제를 대변할 수 없으며, 자신들이 스스로 권력을 형성해야 할 주체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깨달음을 얻은 주민이 스스로 문제를 발굴하고, 논의틀을 만들고, 열띤 논의를 거쳐, 해결 방안을 찾아서, 이를 수용할 것을 권력에 요구하고 있다.

 

권력을 대하는 태도도 전과 달라지고 있다. 주인에게 머리 조아리고 하소연하고 청원하는 방식은 이제는 기대할 게 없고, 집회나 시위 같은 단발성 행사와 물리적 압박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경험과 반성을 통해 이미 알게 되었다. 주민은 객관적인 자료에 기반하여, 자신들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논거를 형성하고,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에 정당성과 명분을 형성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바야흐로, 우리는 현실에서 주권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헌법에 적혀 있는 명목상 주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하고, 권력을 향해 이를 관철하기 위해 분투하는 실질적 주권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현상은 전국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해득실에 따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주민의 요구를 짓뭉개는 의회를 규탄하는 차원을 넘어, 스스로 공론장을 만들어 정당성과 명분을 형성하여 의회를 압박하는 현장도 적지 않고, 주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임에도 중앙정부 눈치 보느라 나 몰라라 외면하는 지자체에 맞서 스스로 시민공론장을 만들어 가는 곳도 있고,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 지역 차원에서 스스로 논의 공간을 열어가는 곳도 있다. 전국 어디서나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열정과 용기, 자발성과 적극성이 어디서 왔을까? 코로나로 생존위기에 몰린 절박함 때문인가? 아니면 2016-7년 대통령을 몰아낸 자신감이 2~3년 예열기간을 거친 후, 현장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일까? 함께 모여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이 단발성 집회나 시위보다 훨씬 강력한 현실성과 대항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주민들은 어떻게 획득하게 되었을까? 위를 보면 권력과 정치권의 한심한 작태에 한숨만 나오고 절망에 빠지지만, 눈을 돌려 아래를 보면 봄볕에 새싹 나듯 삶의 공간을 민주주의로 물들이고 있는 새로운 희망과 마주할 수 있다.

 

시급한 과제는 주민의 이런 열정과 자발성이 소진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고,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그 성과가 지역 사회에 잘 보전되어 성장을 위한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서로서로 돕는 일이다. 

 

약력 소개

현재 국회등록 사단법인 한국공론포럼 상임대표이며, 사회갈등연구소 소장, 국토부 갈등관리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어요. 생태학 박사이고, 지난 20년간 갈등해결과 공론장 형성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 한국공론포럼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groups/1738388286298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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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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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영

이런 열정과 자발성이 소진되지 않고 그 성과가 지역사회안에서 성장의 에너지로 전환되도록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공론장의 현장에서 귀기울여주시는 소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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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장과 자치] 바닥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자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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