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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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신문이 김일성 동생 김영주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김영주는 1920년생으로 올해 나이는 101세에 해당한다. 사실 김일성은 위로 김철주라는 형이 하나 더 있었는데 빨치산 운동을 하다가 1935년에 사망했다.

 

노동신문은 “김영주 동지는 당과 국가의 중요 직책에서 오랫동안 사업하면서 당의 노선과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했으며, 사회주의 건설을 힘있게 다그치고 우리식 국가사회제도를 공고 발전시키는 데 공헌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백두혈통 중에 가장 장수한 인물로 1948년 북한정권 수립과 6.25 전쟁, 조카 김정일 탄생부터 죽음, 고난의 행군과 화폐개혁으로 몰락하는 북한경제 상황, 조카손자 김정은 집권과 함께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등 북한 현대사를 체험한 산증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때 관동군 통역을 맡았고, 해방 직후에는 모스크바 종합대학교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모스크바정치대학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아 1970년대 중반엔 북한 내에서 소련 유학파의 대부로 자리잡았다.

 

한때 박정희 정부는 북한의 2인자를 김영주로 파악하고 어떻게든 김영주와 라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북측에 반강제적으로 김영주와 직접 회담을 요구하였다. 북측에선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으나, 그와 만나야 회담이 의미가 있다고 밀어부친 결과, 1972년 5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두 번의 회담을 갖는 등 7·4남북공동성명 발표에 기여하였다.

 

이 시기 실제로 김일성이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고려하고 있었다는 분석이 많았지만, 그를 물러나게 한 것은 다름아닌 건강 때문이었다. 70년대부터 건강이 극심하게 악화되어 7·4남북공동성명 때도 남측의 집요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후락의 평양 방문답방에 부수상 박성철을 보냈다.

 

1973년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사실상 중앙정계에서 은퇴하였다가 1974년 정무원 부총리에 임명되어 다시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미 김정일이 후계구도를 구축하기 시작해 해외 순방을 제외하고는 별로 활동을 보이지 않다가 1975년에 부총리에서 해임된 이후 두문불출하였다.

 

그 이후 1993년 김일성이 김영삼 대통령과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할 때 총지휘하면서 다시 정치에 등장하여 최고인민회의에서 국가 부주석으로 선출되었으나, 2019년 헌법개정으로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 자리가 폐지됨에 따라 21년 만에 자리에서 다시 내려왔다.

 

김영주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북한과 김영주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통일을 생각할 때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 정부가 실제 김영주를 제2인자로 판단했고, 김일성 사망 당시 부주석이었기 때문에 김정일 대신 김영주가 정권을 잡았다면 2021년 현재까지도 주석으로 활동했을 것이다. 물론 빨치산 경력이 없고 김일성의 동생이라는 점을 통해 고위직에 오른 인물로 장기집권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일성 후계자로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두 번의 회담을 통해 7·4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냈고,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김일성과 김영삼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을 총지휘하였으니 남북통일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나의 기우일까? 김영주의 통일관련 활동기간은 지금의 야당 대통령이 집권할 때와 겹친다. 그때와 지금의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 지도자들의 통일에 대한 철학과 이론이 많이 다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햇빛정책으로 화해협력과 평화통일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대통령은 모두 지금의 여당이다. 매번 대선이 임박하면 북풍과 매카시즘(McCarthyism)이 난무하였다.

 

이번에도 통일에 대한 각 당 후보자들의 통일에 대한 비전은 보이지 않고, 어김없이 출처를 알 수 없는 흑색선전이 뿌려지고 있다. ‘주민자치기본법’ 입법을 두고 ‘주민자치로 위장한 좌파 마을 독재법, 좌파 세력과 외국인(중국인, 무슬림 등)을 주민으로 허용하고 진짜 주민은 허수아비며 좌파세력이 주민총회 장악, 현대판 인민위원회다’라고 적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제발 이번 대선에서는 평화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좋은 통일정책과 통일외교를 준비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하는 기준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병현박사 약력】

단재학당 교장, (사)영천미래연구원장입니다. 대한지적공사,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대구과학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장편소설 『간도묵시록』 저자이며, 북한 및 영토관련 논문 40편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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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현박사 역사칼럼 《단재생각》] ⑭ 대통령 선거, 평화통일 정책 대결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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