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1s.jpg
좌로부터 단재학당 교장 조병현 박사. 동제사 회장 신환우. 청주시민단체 정지성 회장. 한중일 풍수학회 전 회장 신태호.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 단재 신채호선생 며느리 이덕남. 고령(산동)신 씨 대표 신충수. 행동하는시민연합 대표 김태환. 사진=동제사

 

1917년에 국민이 주인인 나라 ‘대동단결선언문’ 선포

임시정부의 뿌리, ‘동제사’ 재조명 필요 

 

지난 17일 동제사(이사장 이덕남) 주관 「대동단결선언문 선포 104주년 기념행사」가 서원대학교 신용한 교수 사회로 청주시 상당구 수동 112-2번지에서 최소 인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917년 7월 17일 예관 신규식 선생은 동지들과 논의를 거듭해 우리 한민족의 국조(國祖) 단군의 홍익인간·재세이화·순방지치(淳厖之治) 이념을 가진 ‘국민(시민·인민)이 주인인 나라’를 건국하기 위해 대동단결선언문을 선포했고, 이번 기념식은 선포 10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미국 참전으로 연합국이 우세한 가운데, 중국 원세개가 황제 등극을 취소하자 우리도 임시정부 수립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917년 7월 17일 국제적 비밀결사체였던 ‘동제사’(同濟社)를 위시한 구국지사들이 민주와 공화의 새로운 나라의 건국을 천명하는 대동단결선언문을 발표했다.

 

‘왕국에서 민국으로,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왕치에서 법치로, 신민에서 인민(시민)을 위한’ 헌법을 제정하고 법치를 표방하는 새로운 나라를 선언했다. 1919년 3월 혁명은 민주와 공화의 건국 선언으로 승화되었고,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대동단결선언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초석이 되었고, 현재 대한민국 헌법 전문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와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천명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2s.jpg
기념식에서 인사말하고 있는 동제사 회장 신환우. 사진=동제사

  

동제사 신환우 회장은 “대동단결선언문 선포를 주도하고 상해임시정부의 전신인 ‘동제사’에 정부와 학계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전쟁 역사상 최초 독립선언서 ‘대동단결선언문’ ·· 국가문화재 제652호 등재

‘대동단결선언문’ 선포에 서명한 14명 중 8명이 동제사

 

대동단결선언문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12월 대동단결선언문을 국가문화재 제652호로 등재했다. 예관 신규식 선생 주도로 조소앙 선생이 초고를 작성했고, 신채호·박은식 선생 등이 감수한 대동단결선언문은 독립투쟁 역사상 최초의 독립선언서였다.

 

예관 신규식 선생이 1912년 5월 20일 결성한 국제적 비밀결사체인 동제사를 위시하여 민주와 공화라는 새로운 나라 건국을 천명하는 ‘대동단결선언문’ 선포에 동참한 서명자는 모두 14명이다. 14명 중 8명이 ‘동제사’(同濟社) 소속이다. 명단은 신정(신규식)·조용은(조소앙)·신헌민(신석우)·조욱(조성환)·신무(신건식)·신채호·홍위(홍명희)·박은식·윤세복·한진(한진교)·박기준·김성(김규식)·박용만·이일(이용혁) 선생이다.

 

대동단결선언문1s.jpg
대동단결선언문 표지와 1쪽(전체 13쪽 중에서). 사진=동제사 ⓒ통통미디어

  

대동단결선언문2s.jpg
대동단결선언문 11쪽과 12쪽(전체 13쪽 중에서). 사진=동제사 ⓒ통통미디어

     

【동제사(同濟社)란?】

국가를 건국하기 위하여 공화주의 혁명가 예관 신규식 선생은 중국 상해에 1912년 5월 20일(음) 비밀결사체로서 동제사를 건립했다. 동제사는 미국·유럽·러시아·일본·중국·몽골·한국·유라시아 등에 지부를 둔 국제적 비밀결사조직이었다.

예관 신규식 선생과 중국 혁명가들은 같은 해인 1912년 말 중국 항주에 신동아제사(新同亞濟社)를 건립했으며, 이들 신동아제사(新同亞濟社) 도움으로 예관 선생은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 수립과 1921년 11월 18일 임시정부 역사상 국가 간의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던 한·중 국교수립을 했다. 후일 중국의 장개석은 1940년 9월 17일 광복군을 창설할 때에도 이를 근거로 해서 지원하여, 이렇게 한국 공화혁명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도산 안창호선생도 1912년 중국 상해로 와서 동제사 수장 예관 신규식선생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었다. 백범 김구도 3·1혁명 후 상해로 와서 동제사 산하의 한국 역사상 최초의 정치 정당이었던 신한청년당의 당수 여운형의 당원으로서 독립투쟁을 했다.

동제사의 도움과 지도·지휘를 받지 않은 독립투사는 거의 없다. 국권을 상실한 후 동제사의 지도와 지휘에 의하여 약 9년이 되기 전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임시정부수립 발기인 29명 중에서 동제사 요원이 14명이었다.


전체댓글 0

  • 56276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국민이 주인인 나라’ 선포 ·· 104주년 기념식 열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