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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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총독부령에 의하여 1912년 민적법이 시행되면서부터 호적부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독립투사들은 이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로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한 것도 모자라서 일본국의 조선인이라는 오명을 쓰고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일제는 가장 먼저 “불령선인“ 즉 조선인 ”독립투사“들을 발본해서 이들을 먼저 관리하기 위하여 호적부에 기입하면서 빨간 줄을 그어 놓았다. 이것이 ‘빨갱이‘ 원조가 되었다.

 

또한 각 지방에서 극렬한 항일과 독립투쟁의 대부(주모자)들을 체포한 일제는 지방에 있는 형무소가 아니라 그 악명 높았던 서대문 형무소에 가두어 놓고 모진 고문을 하였다.

 

독립투사들이 갇혀있는 ‘감옥 문 위에 빨간색 표식‘을 해서 특별히 감시하였다. 이런 연유에 의하여 일제 식민시대부터 독립투사를 ’빨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후 제2차 세계대전 종식과 함께 한반도의 점령군으로 들어 온 미군정을 등에 업고 건재해 진 친일파와 위정자들은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채로 독립투사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빨갱이’라고 폄하했고, 반공이란 미명 하에 독립투사들을 지속해서 탄압해 온 비극의 역사이다.

 

이에 더해 만주에서 일제를 위한 ‘간도 특설부대‘는 지휘관을 뺀 나머지 조선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조선 변경인 중국 동북지방과 러시아 연해주 등 지역에서 항일 무장독립전쟁을 하던 독립투사들을 찾아내 죽이는데 앞장섰던 일제의 부대였다.

 

이 부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조선인 특설부대원은 만주 군관(사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우선권을 주었고, 이들에게 주어진 호칭이 바로 ’선구자‘였다.

 

’박정희’와 ‘백선엽‘ 등이 간도 특설부대에서 일제를 위해 한민족 독립투사들을 앞장서서 탄압했던 민족 반역의 대명사 친일파이다.

 

1938년부터 1945년 해산될 때까지 간도특설대 부대가로 불렀던 노래는 이들의 정신을 잘 말해주고 있다. 

 

「간도특설부대가」 

시대의 자랑, 만주의 번영을 위한

징병제의 선구자, 조선의 건아들아!

선구자의 사명을 안고 우리는 나섰다. 나도 나섰다.

건군은 짧아도 전투에서 용맹을 떨쳐

대화혼(大和魂)은 우리를 고무한다.

천황의 뜻을 받든 특설부대

천황은 특설부대를 사랑한다.

 

이렇게 ‘선구자’라는 말과 ‘빨갱이’라는 말은 독립투사들을 능욕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독립투사들에게 만큼은 이런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오로지 구국만을 위하여 대를 이어 희생했던 독립유공자들을 폄하하는 줄도 모르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 안타깝기만 하다.

 

현재 간도특설대 출신 친일 반민족행위자 2009년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김백일, 김석범, 김홍준, 백선엽, 송석하, 신현준 등 6명을 국군 창군 원로라고 예우하면서 또한 박정희를 포함해 국립현충원에 떳떳하게도 묻혀있는 현실이다.

 

이런 민족 반역의 대명사인 친일파들 득세는 곧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에게 빨갱이에 더해 반공이라는 색깔론까지 동원하여 폄하와 탄압하면서 연좌제의 덫까지도 씌웠다.

 

광복은 되었지만 유족들은 항일 독립투쟁의 고투가 계속되고 있으며, 1979년 박정희가 죽은 다음 1980년대 초까지 그저 숨죽이면서 생명만 유지한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일제에 항거하기 위하여 일제의 민사령에 의한 호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유족들은 광복 후 외가로 또는 친척 그리고 남의 자식으로 입양하는 등으로 살아 남았다.

 

필자의 부친 또한 친족 서출의 아들로 입양되는 기구한 삶을 살다가 박정희가 죽은 다음 연좌제가 없어지면서 친생부인 독립유공자 송암 신경구의 아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국립 현충원은 국방부가 처음부터 군인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시설이다.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 관리소 발족에 이어, 1956 4월 13일 대통령 국군 묘지령에 의해 현재까지도 국방부가 관할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독립유공자들은 현충원에 더부살이로 안장되어 있고, 나머지는 여기저기 흩어진 채 유족들이 모셔오고 있다.

 

더구나 무국적자를 포함한 무후손 독립투사들 약 20만여 분의 위패는 봉안할 시설조차 없는 현실이다. 이렇듯 독립유공자를 위한 제대로 성역화된 국가차원의 묘역은 아직도 없다.

 

또한 아직도 「독립유공자 및 유족의 국적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제정되지 않고 있지만 꿋꿋하게 살아서 건재하고 있는 ‘독립유공자 유족의 대한민국 건국회 동제사’를 위시하여 민주와 공화로 이어진 민족정기를 갖고 ‘한국정신‘은 ‘호령‘한다.

 

독립투사들의 얼과 혼을 위시한 한민족의 민족정기로 이어진 ‘민주와 공화의 한반도는 호래자식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독립유공자 및 유족의 국적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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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예우 현황과 문제점] ③ 독립유공자는 빨갱이도, 선구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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