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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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삼일절을 맞이하여 수운회관 앞 기념행사장과 삼일공원을 다녀왔다. 

 

기념식장에는 독립유공자 후손과 정치인, 민족종교지도자들이 참석해 “삼일독립정신을 계승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왠지 마음에 들지 않고 꺼림직하였다.

 

특히 독립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사람들이 삼일절을 같은 장소와 안내 책자에서 ‘3.1’ 또는 ‘3·1’, ‘삼일’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여·야 정치지도자들의 입장 차이와 ‘유사시 日자위대 한반도 개입’을 언급한 제1야당 관계자의 ‘독립정신’ 발언에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가 항복문서에 조인하고 “100년 뒤에 반드시 되돌아온다.”라고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는데, 삼일절을 목전에 두고 ‘유사시 日자위대 한반도 개입’을 말하면서 어떻게 독립유공자를 입에 올릴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사시 日자위대 한반도 개입’은 박성황 선문대 교수의 「북한 급변사태와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가능성에 관한 소고」에 잘 나와 있다. 일본 자위대 통합막료회의는 1963년 《미쓰야겐큐(三矢硏究)》라는 모의 군사작전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그 내용을 발표하였다.

 

한반도에서 무력분쟁을 가정하고 비상사태 시 일본 방위를 위한 자위대 운용과 이와 관련된 제반 조치와 절차를 연구한 것으로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 한반도 진출과 미일 공동 작전 실행, 선제 타격, 핵무기를 사용하여 만주를 탈환하겠다.”는 구상이 단계별로 나타나 있다.

 

일본의 이러한 구상은 1997년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과 1999년 주변사태 관련법 제정, 2002년 미일 공동 개념계획 5055 수립, 2015년 미일 방위협력 지침(신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보강되었다.

 

실제 일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 진출’을 노골화하였다. 또 2010년 12월에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가 “유사시 일본인 구출을 위해 자위대 한반도 파병을 논의하겠다.”고 말했고,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상은 2015년 10월 21일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의 지배가 유효한 범위는 휴전선 남쪽이기 때문에 한반도 유사시 무력을 행사하겠다.”라고 떠벌렸다.

 

유력 대권 후보가 이러한 일본의 구상을 모르고 거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몰랐다면 최고지도자로서 실격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삼일절의 숭고한 정신도 정쟁의 도구로 변질되어 국민통합에 장애가 되었다는 점이다. 동학혁명부터 청일전쟁,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피의 대가로 쟁취한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본의 구상에 미국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사실상 찬성하고 있다. 우리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갖고 있지 않아 미군이 요청하면 일본이 개입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우리는 우리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자위대 진출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잘 모르지만 일본은 6·25 당시에도 미군의 극비 요청으로 소해정 20척을 한반도에 파견한 적이 있다. 당시 미군은 이런 사실을 한국에 알리지 않았다. 우리가 어영부영하고 있는 사이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은 단순한 구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버렸다. 일본의 이익선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결단해야 할 때가 되었다. 여·야 정쟁에서 벗어나 “한국과 유엔의 승인없이 절대 한반도에 개입할 수 없다”고 천명해야 한다. 다시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와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 우리는 국가 지도자가 얼마나 중한지 목도하고 있다.

 

러시아 푸틴은 구소련의 영광을 부활시키기 위해 무력을 증강하면서 오래 전부터 우크라이나를 병합하기 위해 준비해 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어로 변경의 땅이란 뜻으로 “우크라이나는 죽지 않았다.”를 외쳤지만 전쟁을 막을 수 없었다.

 

수도 키예프 중앙공원과 국립기술종합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기억이 생생하다. 얄타시와 리바디야 궁전, 리비우의 안젤리카 케노바의 추억, 동유럽의 멋진 도시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제 1994 부다페스트 조약과 2014 민스크 협약도 힘 앞에는 소용이 없게 되었다.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크림반도를 포함한 영토 보전과 주권 보장, 경제적 지원 등을 국제적으로 약속받았으나 힘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곧 진정되겠지만, 또 하나의 그레이트게임이 시작되었다. 확고한 역사의식과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조병현박사 약력】

단재학당 교장, (사)영천미래연구원장입니다. 대한지적공사,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대구과학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장편소설 『간도묵시록』 저자이며, 북한 및 영토관련 논문 40편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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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현박사 역사칼럼 《단재생각》] ⑲ 역사의식과 국민통합 지도자 ··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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